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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차 설악산 봉정암
108산사 조회수:954
2015-06-24 11:47:02
108산사순례 회주 선묵혜자 스님이
봉정암을 홀로 순례한 까닭은?

지난 6월 7일 이른 새벽, 나는 우리 ‘108산사순례’ 회원들에게 나누어 줄 7천 여 개의 108염주 알이 든 걸망을 지고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적멸보궁 봉정암으로 가기 위해 순례를 나섰다.

9년 동안 108산사순례가 연기된 적은 꼭 한 번 있었는데, 2010년 1월 전국이 구제역파동에 휩싸였을 때였다. 이번 제 104차 108산사순례 봉정암 순례도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 불리는 메르스 전염병으로 인해 순례 법회를 봉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냥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더구나 올해 10월에 ‘선묵혜자스님과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순례’를 1차 회향할 예정이어서 어쩔 수 없이 나는 홀로 봉정암 순례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봉정암이라는 황금색 글자가 새겨진 7천여 개의 염주알을 걸망에 지고 홀로 봉정암에 가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사리탑에 올리고 기도를 드린 뒤, 나중에 염주알을 회원들에게 하나하나 나누어 줄 생각이었다. 비록 천재지변으로 인해 순례를 가지 못해서 매우 안타깝지만 이렇게라도 봉정암 순례를 해야만 했다. 지난 세월동안 우리가 여법하게 순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불보살님의 가피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백담사 입구 수렴동 계곡에 도착하자, 개별적으로 온 우리 회원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그들을 보니 몸에서 없던 힘까지 쏟았다. 하늘을 쳐다보니 푸른 하늘과 바위산이 경계를 이루고 초록의 숲이 빚어내는 신선한 공기가 마음을 상쾌하게 했다. 간간히 신선한 유월의 바람이 가사를 적셔들었다. 백담사 입구에 수북하게 쌓아놓은 돌탑들이 잠시눈길을 끌었다. 나는 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저마다 소원을 빌며 세운 무수한 돌탑들을 바라보았다. 크고 작은 돌탑들이 균형을 잃지 않고 서 있는 모습들.

나는 백담사 입구에서 만난 우리회원들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허허 메르스가 겁나지 않아 그냥 집에서 기도를 하지 왜 왔어요.” 물었더니 “한 회원은 다섯 시간을 홀로 걷는 스님이 외로울 까봐 이렇게 왔지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는 봉정암으로 가는 길인데 메르스가 왜 겁이 나겠어요.”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그런 그들을 보니 마음이 흐뭇했다.

길은 멀었다. 내가 도선사 주지 소임을 맡고 참법기도를 위해 매년 신도들과 함께 10년 동안 봉정암을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힘들지 않고 순례를 갔었다. 그러나 홀로 떠나는 이번 순례는 세속의 나이도 들고 체력도 달려 마음과 몸이 적잖이 힘들었다. 정말 세월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108산사순례 회원들을 생각하면 피곤함도 사라지고 오히려 마음이 즐거웠다.

발 딛는 곳마다 숲속에서는 다람쥐가 인사를 한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 때문인지 이곳의 다람쥐들도 야성을 잃은 지 오래된 것 같다. 산길 곳곳마다 이름 모를 풀꽃들이 향기를 품어내고 계곡마다 흐르는 물소리가 청아한 소리를 낸다.

한 시간을 걷자, 영시암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108평화도량 도안사에서 가져온 주먹밥으로 요기를 하고 잠시 바위에 앉아 쉬었다. 하늘을 쳐다보자 맑은 구름이 설악산에 걸쳐있었다. 하늘이 산이자 산이 하늘인지 모를 유월의 풍경이 무심하게 펼쳐져 있었다. 운수납자(雲水衲子)의 행각이 이러 하리라.

영시암의 약수터에서 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순례를 떠났다. 얼마쯤 지났을까. 다리와 발바닥이 조금씩 저리고 아파왔다. 잠시 걸망을 내려놓고 대청봉에서부터 흘러내린 계곡물에 발을 담갔더니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감싸든다. 옛 고승들도 그랬을까. 교통수단이 전혀 없었던 옛날의 수행자들도 아마 산과 나무와 물소리와 새소리를 벗 삼아 행각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운수납자들은 화엄(華嚴)의 세계에 젖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여기가 바로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의 화엄이리라.

다시 길을 떠나고 얼마 쯤 지나자 깔딱 고개가 눈에 들어 왔다. 힘들어서 숨이 목구멍에 걸린다는 깔딱 고개를 오르자 걸망에 진 염주알이 서로 서로 부딪쳐 구르는 듯한 소리가 귀에 들려 왔다. 걸망에서 아우성이다.

우리회원들의 염원과 행복이 담긴 108염주 알. 이미 네 시간이 걸렸는데, 이제 부터가 또 다른 고행이다. 봉정암으로 오르는 길목에 마지막으로 깔딱 고개가 버티고 서서 있다. 아마 모든 탐욕과 근심들을 내려놓고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맞이하라는 뜻인가 보다. 그러므로 깔딱 고개에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놓아야 하리라.

적멸보궁의 사리탑에 도착하고 난 뒤 나는 걸망을 내려놓고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늘 바라보는 산과 바위와 하늘이지만 오늘은 새삼 그것들이 모두 부처님의 형상을 한 것 같다.

나는 108산사순례회원들을 대신하여 삼일기도를 시작했다. 봉정암의 밤하늘은 그지없이 적막했다. 여느 때의 순례처럼 매일 똑같이 천수경을 독송하고 108참회문을 읊고 108배 참회기도도 했다. 그리고 지극정성으로 회원들을 위해 빠짐없이 축원을 했다.

이틀 날 밤이었다. 내가 홀로 우리 7천 여 명의 회원들 한 사람 한사람의 몫을 대신하여 기도를 올리는 마음은 참으로 간절하고 절실했다. 스님을 믿고 스님을 따라서 지난 9년 동안 함께 순례 한 우리 회원들은 비록 스님과 함께하지 못한 순례이지만 이미 마음은 봉정암을 다녀 온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을 강타하고 있는 메르스 전염병이 어서 사라지라고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했다.

‘모든 중생의 아픔을 섭수하시는 부처님 메르스 전염병의 공포로 불안과 초조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국민들에게 감로의 약과 희망을 주시옵소서, 메마르고 참혹한 국민의 가슴에 맺힌 고통과 슬픔, 분노를 녹일 수 있는 자비심이 싹이 트도록 하여 주시옵고 하루 빨리 108산사 순례기도 회원들이 당신을 찾아 간절히 일심기도토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간절한 기도소리와 독경소리는 설악의 밤을 조용히 울려 번져 나갔다.

이튿날 아침에는 그동안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대청봉을 올랐다. 봉정암에서도 약 3km는 더 가야 한다. 산길은 언제나 평 길보다 두 서너 배의 시간이 더 든다. 나는 그곳에서도 기도를 하고 돌아왔다.

제 104차 산사순례기도 봉정암 순례를 홀로 마치고 산길을 터벅터벅 내려오는 길, 아름다운 설악의 바위산과 푸른 하늘의 경계에 마음을 모두 내려놓았다.

봉정암 순례를 하고 온 이튿날 오후, 내가 머물고 있는 108 평화도량 수락산 도안사의 대웅전 동쪽 하늘 위에 일심광명 무지개가 환하게 장엄했다. 지난 제 102차 보리암, 제 103차 연주암 순례에 이어 봉정암 순례를 다녀온 뒤에 펼쳐진 불보살님의 가없는 가피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