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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08평화순례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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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김영자>
108산사 조회수:835
2013-02-12 10:46:01
<통도사를 다녀와서>
선묵 혜자스님과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순례법회에 회원으로 가입할 때 꼭 하고는 싶지만 할 수 없는 지금의 내 상황이 여러번 망설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책하고 염주가 탐나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서 작은애한테 엄마가 못가면 너라도 대신 가달라고 부탁하고 나서 눈 딱감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산넘어 산이라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팔정도, 정어보살에 자리를 주셨을땐 참말이지 암담했습니다. 정말이지 못한다고 할수 없다고 아래로 위로 다니면서 해달라고 부탁하고 집에 왔더니 며칠후 묘화봉 보살님이 전화주셔서 두어달 만이래도 봐달라고 부탁하는걸 마저 거절할 수 없었던게 지금에 와서 안시켜줬으면 서운할뻔 했다고 농담처럼 얘기하게 됐습니다.

<2006년 10월 17일>
난생처음 가게 된 통도사. 전날밤 소풍가는 어린애처럼 잠이오지 않아 통도사 시를 읽고 연혁을 읽고 그대로 시간이 남아 궁금한 다른 곳을 많이도 찾아 읽어도 그밤 새다시피해서 다른 보살님들과 만나기로 한 떡집에 5시 40분에 가서 찰밥한알과 떡 한말을 가지고 조계사 앞으로 갔지만 처음이라 우리가 탈차는 한참만에 팻말이 붙고 하지만 마음은 들뜨고 멀미약 탓이 뒤에 앉았는데도 멀미도 안하고 그 이튿날이 작은애 생일이라 집에서 일할땐 몸이 찌뿌둥했었는데 아무튼 신나고 흥이 났습니다.

명색이 불자라 면서 삼보사찰 한번 못가본 흥분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주차장에서 내렸을때 그 많은 회원들속에 나도 있어서 참으로 말할수 없이 좋았습니다. 남편은 집에서 혼자일하고 나만 누리는 호사가 미안하기도 고마웠습니다. 그 끝없는 회원님들의 행렬이 큰감동이었다면 설법전에서의 그 기도는 어느글로 표현해야 할까요. 겨우 초등학교 졸업이 내 학력의 전부인 내가 이런 글을 쓰는걸 보면 눈물이 날만큼 가슴이 벅찼다고 할까요.

저도 이처럼 행복한 시간을 갖게해주신 선묵 혜자스님과 우리나라에 대한 기도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다같이 일심으로 기도하며 석가모니불을 부를때 하늘에서까지 그 축제의 장에 동참해주신 것을. 무지개는 뜬다 들었지만 햇님이 춤추는걸 본 나는 살아있는동안 그 기억만으로도 오랫동안 행복할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예기를 꼭 해야 할것 같습니다.

나나 애들 아버지나 둘다 배운게 없어 옷만드는 기술을 배워서 그걸로 지금껏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하나 쓰고 있는 다름 아닌 몽골에서 온 45세 된 아주머닌데 우리나라에 온지 5년쯤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집에 온지 한달 약간 안됐지만 두 부부가 이곳에서 불법체류자란 이름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 나라에선 의사였다고 합니다. 전에 일하던 사람들도 교사, 간호사들로 러시아에 유학까지 갔다왔다는 사람도 봤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낍니다. 우리 개인들 아니 나같은 하층인들은 아무리 열심히 산다해도 나라가 부강하게 잘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제발 우리들이 늙어선 아들, 딸들 애봐주느라고 우리나라에 일자리가 없어져 다른나라로 돈벌러 가느라고 그런 사회 문제 없이 살게 되기를 왜 그 설법전 마당에서 하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기특하고 대견해집니다.

큰 곳에 가면 큰 생각이 미치나 봅니다. 이제는 우리집 잘살게 해 달라는 기도가 시시해졌습니다. 건강하면 열심히 일하니 밥은 먹고 살것이고 그러니 나라가 부강해져서 우리 모두가 행복해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듭니다. 열네살때부터 해온 일이라 사는데 두려움은 없으나 늙고 병들었을때 애들 걱정까지 할까봐 괜한 걱정까지 해 집니다.


<해인사를 다녀와서>
밥을 앉혔다. 쌀을 너무 많이 담궈서 좀 불안해서 일찍 밥을 하기로 했다. 교통방송에서 이종환의 마이웨이를 듣다가 원래 보통 이시간까진 일을 하니까 큰 솥 두 개에다가 하기로 가스불을 켰다. 너무 욕심껏 많이 했더니 금세 타는 냄새가 났다. 큰일이다 싶어 작은 솥에다 다시 옮겼다. 밥뜸들일때 목욕하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썼다. 아이들이 한번씩 쓴거라 그 위에 쓰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원래 이리 열성적인 사람이었던가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에게 있어 아이둘은 어느 의미인가 생각이 든다. 큰아인 보통 평범한 모범 학생이고 둘짼 내겐 효자이며 살가운 아인데 남들은 평이 좀 다르다.

말썽이 잦고 공부 좀 못하고 아니 공불 못하니 다른 장점은 다가려진 하지만 나에겐 엄마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준 아이다.1990. 음 8.27일니 생일이었으니 그날을 생각하면 저절로 부처님께 아니 스님께 감사의 맘이 든다. 토요일까지 배가 재봉틀에 닿으면서까지 일을 하고 일요일 쉬고 예정일이라 월요일날 다니던 병원에 갔더니 사진을 찍어오랜다. 사진을 찍고 불안해진 마음으로 다시 갔더니 사진보며 병원을 옮기랜다.

물어보니 큰 병원으로 가야 된다고 낳아도 옮겨야 하니 낳기전에 옮기라고 서울대 병원엔 소개서를 써 준다고 아이가 사진속에선 고개를 못가누는걸로 보인다고.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의 실감을 그때했다. 병원에서 스님께 전화를 드렸다. 스님 놀랄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나만 산다고 했다. 나만 살겠다고 했다.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내게 너무 무서웠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런 아일 키울 자신만 없었다.

병원비도 걱정이고 아무 대책도 없이 이대 병원으로 갔더니 소개시켜준 선생님은 세미나 가시고 안계셔서 그냥 특진 선생님으로 했더니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얼마나 호기심으로 들락거리는지 큰아인 정상분만을 했는데 내몸이 정상이 아니라 아이가 조금 더 커서 제왕절개를 했다. 시어머니, 친정엄마, 애 아버지 걱정할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가득찬 이기심은 나만 살겠다고 철없이 말할정도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천만다행 스님께 전화드린 보람으로 아인 정상이었고 나도 건강하고.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면 내 보따리 내놓으라는 옛말 있듯이 옛일 다 잊고 지금은 공부 잘 못한다고 구박하는 엄마가 지금 이글 쓰면서 반성합니다. 그런데 올해 아이가 사고를 쳤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스파나로 친구 머리를 때려서 찢어지고 피가나서 꿰맸다고 내일 학교로 오라는 연락을 담임 선생님한테 받았습니다.

땅이 꺼져서 숨을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럴수는 없었고 자식일이라 그런지 내가 잘못키웠으니 내가 용서를 받아야 할것 같아서 친구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그 어머닌 미리 용서해주시기로 계획 하셨던 것 마냥 선생님께서 내가 착하다고 말씀하셨다고 내일 원준이만 야단쳐서 다시는 이런일 없이 하겠으니 걱정말라고 나를 대신 위로해주시더라구요.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이 시우 빨리 낫게 해달라고 신묘장구대다라니 철야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연도 돌이켜보면 우연은 아닌것 같습니다.

아이 병원비가 백만원정도 되어서 참으로 걱정이었는데 아이 아빠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5년 정도 일할 때 사회보장기금을 냈는데 막막한 그때 그돈을 찾아가라는 겁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우리 부처님의 가피와 스님들의 기도로 여기까지 왔는데 스님들께서 도선사로 가라고 일러주시지 않았다면 오늘 이글 쓸 필요도 없었겠지요.

다행히도 횡설수설이지만 대충이래도 이렇게 글로 적고 보니 내가 왜 아이 생일이라고 핑계삼아 밥하고 싶어했는지 이해가 되죠. 해인사 비로자나 쌍둥이 부처님께 108를 올리며 기도했습니다. 엄마에게 지혜를 주셔서 아이들 정신도 몸도 건강하게 키우게 해달라고 난 너무 부족해 어떻게 할줄 모르나 선묵 혜자스님께서 세운 그 원력의 힘을 믿어 나도 내 아이들이 못할게 뭐있나 하는 자신감으로 애들을 키우겠습니다. 해인사를 전란중에도 구해내신 그 장군님께도 감사기도 드리겠습니다. 만분의 일이래도 그 장군님을 닮은 아이들로 키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송광사 다녀와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송광사를 다녀와서>
절에 다녀 오라고 일감이 없다. 일이 있으면 간다고 나서기 곤란할텐데 부처님은 내 마음을 아나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지만 갔다와선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내 살아오면서 이렇게 한꺼번에 호사를 누릴수 있어서 참말 좋다. 국사를 열여섯분이나 배출한 터라는데 글을 쓰면서도 설레서 이 흥분을 가라 앉혀야겠다. 열한시가 넘은 시각 먼저번 해인사 갈때는 첫눈이 내려서 우릴 반겨줬는데 내일은 어떨래나 쉬 잠을 이루길 어려울것 같다.

잊지 않고 내일 송광사에 가선 우리 애들 둘 자기 밥벌이하고 나라에도 보탬이 되는 아들들로 키워달라고 기도해야겠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둘째 원준이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보내주라고 떼라도 써야겠다. 왜냐면 엄마라는 이름은 용감하니까. 국태민안 가족건강 학업성취발원
선묵 혜자스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