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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08평화순례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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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그 자체였다<송희순>
108산사 조회수:852
2013-02-12 11:00:09
며칠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다가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다기에 팔정도로서의 소임을 맞은 사람으로 보살님들께 옷 따뜻하게 오시라고 전화를 다 드린 후 자리에 누웠는데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설레임에 밥을 먹는둥 마는둥 급하게 먹고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데,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의 날씨는 정말로 매섭게만 느껴졌다. 신심있는 우리불자들에게는 추운 날씨쯤은 대적할만한 대상이 아니라 믿고 승보종찰 송광사로 향하여 무사히 출발하였다. 휴게실에서 화장실 문제로 몸시 걱정하였었는데, 지난 번 처럼의 진풍경은 벌어지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빨리 다녀올수 있어 너무나 좋았다.

천리길을 다녀 우리의 도착지 남도자락 호남정맥, 드디어 순천시... 예부터 내려오던 영․호남인들과의 곱지않던 편견 때문에 나또한 반대쪽의 한사람으로 그다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모든 걸 바라보았었다. 그런데 와서 본느낌은 정반대인것 같았다. 날씨도 서울과 달리 너무도 따뜻하고 사람들 풍기는 인상도 너무나도 포근하고 마치 옛고향의 시골집에 온듯한 모든 것이 따뜻하고 포근하고 아늑함 그자체였다.

법당마다 부처님이 너무나 자애로우시고 피안대소 웃으시는 모습이 우리 중생들을 위해 저렇게 모든 걸 해탈한 참 부처님상이시구나. 정말 고맙게 감사하게 느끼고 광장으로 내려와 그곳 주지스님의 환영사를 듣던 중 그만 눈물이 왈깍 쏟아졌다.

도선사 우리 주지스님의 108산사 아이디어 착안이며, 그곳 송광사에서의 소시적 승녀로서의 초석을 다질 때며 많은 훌륭함을 피력하실 때 마치 나의 일인양 모든 것이 뿌듯하고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생각을 하셨을까 불심이 그다지 깊지 않았던 초발심자인 내가 이곳에 같이 동참하였다는 깊은 우월감에 주지스님을 잘만나 평생 한번와보지 못할 이곳 송광사까지 인연을 닿게한 감사의 눈물 등등등....

108번뇌를 소멸하고 참회의 기도와 가족의 건강과 남편 사업번창, 가족화목, 장남 대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인기연예인이 되달라고 막둥이 원하는 고등학교에 배정받아 열심히 공부해서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무사히 입학할 수 있게 해주십사 기도를 드리고 줄을 서려는데 벌써 우왕좌왕 먼저 낙관을 받겠다고 아수라장이었다.

아니 스님 법문도 채 끝나질 않았는데, 아이들도 아닌 어른들이 저런 행동을 하는걸까 민망하고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스님들께서 질서를 잡아주셔서 금방 고요해졌지만 많이 고쳐져야 할 우리들의 과제인듯 싶기만 하다. 책에 낙관과 염주알을 감사히 받고 유일하게 그곳 송광사만이 대웅전 뒤편에 선방이 있다고 하셨는데, 몹시 궁금한 그곳의 생활, 나만의 생각으로 모든 걸 초월하고 정진하는 승녀로서 지낼 앞으로의 생활이 너무도 애처롭고 그들부모 생각하니 자식키우는 부모입장으로 마음이 몸시 아려왔다.

선방의 문고리 한 번 잡으면 좋다고 아픈마음 뒤로하고 내자식, 내 가정 좋으라구 염체없이 몇 번씩이나 잡았었던지... 16국사 나투시어 한국불교 이끄시고 수많은 문화재의 산실 송광사는 정말 한국불교 성지다운 영험함 그 자체임을 여실히 느꼈다. 모든 기도도량을 다 돌고 기와불사를 끝남과 동시에 와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역시나 오늘도 또 상서로움이 찾아왔구나 하고 하늘을 본 순간 눈이 부셔 쳐다볼 수가 없었다. 광명 그 자체였다.

핸드폰으로 그 모습을 남기고 마지막 관문 화장실을 갔는데 밑을 쳐다보니, 정말 너무 높아 무서움에 현기증이 났지만 몇분 남짓한 시간에 옛날 어릴적 추억에 아련히 빠져 들게 하였다. 화장실까지도 국보급에 옛 정취가 그대로 묻어나와 추억의 시간이 되었던것 같았다.

모든 걸 마치고 차를 향하여 나가는데 정말 옛시골 장터처럼 자판이 많이 늘려있고, 그 곳 특산품이 즐비하게 늘려있는 모습이 소담스럽기만한 풍경이 옛 시골의 향수가 생각나고 묘한 기분이 드는게 너무도 정감있고 따뜻하고 좋았다.

조금 내려오니까 할머니 몇분이 직접 농사 지은 것들을 가져나와서 몇푼이라도 당신손으로 벌거라고 저렇게 추운날씨에 고생하시는구나 생각하니 친정엄마 생각에 마음이 몹시 아팠었지만, 그 노고에 조금이라도 일조한다는 생각으로 한편으로는 뿌듯함에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필요한 몇가지를 사가지고 차로 돌아오니 배가 몹시 고팠다. 남아있던 떡이며 과자를 맛있게 먹고 그곳 정취를 뒤로한채 나의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일상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