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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인도 네팔, 부처님 4대 성지를 찾아서
108산사 조회수:821
2015-05-12 11:47:35
네 곳을 순례하면 절박함에서 벗어나리라…
선묵 혜자스님과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순례기도회
- 인도 네팔, 부처님 4대 성지를 찾아서


‘선묵혜자 스님과 함께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 산사순례 기도회’ 회원 120명은 인도·네팔에 있는 부처님 4대 성지인 초전법륜지 사르나트, 성도지인 보드가야, 열반지인 쿠시나가라, 탄생지인 룸비니와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 최초의 승가대학으로 알려진 나란다 대학, 제 1경전 결집지인 칠엽굴, 제 2경전 결집지인 대림정사,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기전 수행하셨던 전(前)정각산과 법화경을 설하셨던 왕사성 영축산, 금강경을 설하셨던 기원정사를 순례(3월22일-4월 1일) 다녀왔다. 이 글은 선묵혜자 스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생전 법륜을 굴리면서 고행하셨던 그 그림자를 밟으면서 쓴 구법여행기이다.

나와 우리회원들이 인천공항의 하늘을 날아 홍콩을 경유하여 인도 델리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늦은 밤이었다. 무려 10시간이나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쿠시나가라의 열반지에서 열반을 앞두고 시자인 아난다가 이렇게 물었다.
“부처님 이제 가시면 저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난아. 너희들이 절박함을 느낄 때 이곳을 순례하면 모든 것이 해결 될 것이다. 이곳에서 여래가 태어났다. 이곳에서 여래가 초전법륜을 굴렸다. 이곳에서 여래가 깨달음을 얻었다. 이곳에서 여래가 완전한 열반을 얻었다. 이 네 곳을 모두 순례하면 절박함에서 벗어 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네 곳은 바로 룸비니와 사르나트, 보드가야, 쿠시나가라였다. 나와 우리회원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을 앞두고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던 그 네 곳의 성지와 그 밖의 성지들을 순례할 예정이었다.

다음 날, 우리의 발길은 델리 공항에서 인도 국내선을 타고 바라나시의 공항에 닿았다. 다시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초전법륜을 굴렸던 사르나트의 ‘영불탑(影佛搭)’에서 첫 순례의 발길을 내딛었다. 영불탑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도를 하신 뒤, 초전법륜을 굴리기 전 오(五) 비구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제일 먼저 친견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왕자였던 싯다르타가 출가한 후 오 비구와 함께 수행을 하다가 고행을 겪은 뒤 이것이 진정한 수행의 길이 아님을 알고 그들의 곁을 떠나 목녀 수자타가 준 유미죽을 먹고 기운을 얻은 뒤 보드가야 보리수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을 누구에게 가장 먼저 설법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오 비구에게 법륜을 굴리기 위해 오셨던 그곳에 ‘영불탑’이 세워졌다.

다시 발길을 옮긴 곳은 초전법륜지 사르나트였다. 멀리서 부처님이 처음 법을 설한 사르나트(녹야원)의 다메크 탑이 눈에 먼저 들어 왔다. 붉은 벽돌을 쌓아 이루어진 녹야원 한쪽에서 오 비구에게 설한 장소에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붙인 금박지들이 태양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 비구에게 법륜을 굴린 법은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와 팔정도였다.

다음날 꼭두새벽, 바라나시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갠지스 강으로 갔다. 이른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분주하였다. 거리에는 소, 릭샤, 오토바이, 자동차가 뒤엉켜 묘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문명과 비문명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풍경들이 그곳에 있었다. 적어도 100년 동안의 시대가 그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갠지스 강가에는 힌두교 수행자들인 사두가 곳곳에서 앉아 있었다.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햇빛에 탄 얼굴을 한 그들의 모습 속에서 고된 수행자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우리 일행은 배를 타고 갠지스 강을 건너 모래를 밟았다. 마치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더미 저쪽에서는 붉은 태양이 머리를 내 밀고 있었다. 갠지스 강의 일출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붉은 빛을 자아내고 있었다. 일출과 갠지스 강의 물결, 그리고 모래가 이루어내는 장관이 그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우리회원들은 그 붉은 일출을 보면서 간절하게 기도를 올렸다.

쿠시나가라 열반당에서 우리회원들은 부처님께 가사공양을 올리고 간절하게 기도를 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3월 인도의 날씨답지 않게 폭풍이 몰아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희유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초전법륜지인 바라나시를 떠나 5시간을 달린 끝에 영원한 깨달음의 성지인 비하르주 보드가야에 도착했다. 29살에 출가를 하고 6년간의 치열한 고행 끝에 기원전 589년 12월8일, 동쪽에서 떠오르는 새벽 별을 보고 여기에서 마침내 고행자 고타마 붓다는 성도를 하고 부처님이 되었다.

몇 년 전 보드가야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 때문인지 마하보디대탑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경계는 삼엄했다. 곳곳에서 총을 든 군인들이 보였다. 그러나 대탑이 있는 경내로 들어서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스러운 기운이 온몸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곳곳에는 한국에서 온 순례자는 물론 중국, 일본, 티베트, 네팔, 스리랑카, 미얀마, 베트남인들이 마하보디대탑 주위에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와 120명의 우리회원들은 여기에서 이틀을 머물러 기도를 할 예정이었다.

마하보디대탑안의 부처님께 정성스레 준비한 가사를 공양하면서 마음속으로 부처님께서 그토록 간절하게 수행을 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랬다. 부처님은 ‘어느 세상에서도 얻기 어려운 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이 자리에서 죽어도 결코 일어서지 않으리라.’라고 했었다.

우리 회원들은 마하보디대탑의 벽면을 사이에 두고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면서 참회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그 눈물은 애써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벅차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어서 그냥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었다.

이튿날 저녁,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신 후 선정에 들었다는 일곱 장소를 차례로 참배를 한 후 동쪽에서 샛별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앞에 앉아 기도에 들어갔다. 순례자들이 언제나 앉아 있었는데 그 자리가 그날은 우연하게도 비워있었다. 나와 회원들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그 자리에서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 또한 큰 복덕이었다.

기도를 마친 후 눈을 들자 보리수 위의 저녁하늘에는 노란 초생달이 아름답게 떠 있었고 그 옆에는 수많은 저녁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와 우리 회원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이 우리 순례자들을 굽어보고 있는 듯 했다.

어디선가 바람에 보리수 잎이 우두둑 기도를 하는 순례자들 머리위에 떨어졌다. 크고 작은 보리수 잎, 회원들은 그 보리수 잎을 경전 속에 하나씩 끼워 넣었다. 깨달음의 보리수 잎은 오랫동안 우리회원들의 마음속을 온전히 젖게 할 것이다.

나와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을 버스로 이동한 뒤 라즈기르에 닿았다. 이곳은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한 왕사성의 영축산과 밤비사라왕의 감옥 터,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 제 1경전 결집지인 칠엽굴, 최초의 승가대학인 나란다 대학과 제 2경전 결집지인 대림정사가 있는 곳이다.

우리 일행의 발길이 제일 먼저 가닿은 곳은 왕사성에 있는 영축산이었다. 발길을 딛자 멀리서 부처님이 누운 형상을 한 와불산이 장엄하게 눈 안에 들어 왔다. 내리 꽂는 듯한 태양이 순례자들의 몸을 힘들게 했지만 간혹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마치 우리들의 귀속에는 독경처럼 들렸다. 아니 그 소리는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소리인 듯했다.

영산교를 지나 왕사성 영축산의 영산회상에 올랐다. 그곳은 부처님께서 성도를 하신 후 법화경과 보적경을 설하신 바로 그 장소였다. 형상이 꼭 독수리가 앉아 있는 듯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영축산에 올라 굽어보니 와불산이 한 눈에 들어 왔다. 그 아래로 아난다와 여러 제자들이 수행을 했다는 굴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부처님과 1250인의 제자들이 함께 머물었다고 경전에는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나는 그 영산회상에서 가부좌를 하고 법화경 중의 ‘수희공덕품’을 천천히 독송하였다. 그 소리는 와불산과 기사굴을 퍼져나갔다. 회원들은 모두 목이 메인 듯 울먹였다. 아마 이역만리를 달려와 경을 듣는 벅찬 감동에 스스로 감응(感應)하였기 때문이리라.

우리의 발길은 다시 최초의 사원으로 알려진 죽림정사와 칠엽굴로 향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고 왕사성을 찾았을 때 밤비사라왕은 죽림 동산에 이 죽림정사를 지어 바쳤다, 대나무 숲에는 한국은 물론, 라오스, 네팔, 프랑스, 독일, 일본, 미얀마, 중국에서 조성한 대나무들이 울창하게 줄지어 서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른 유적지에 비해 아직 발굴이 거의 되지 않은 상태로 아직 남아 있었다.

오후에는 최초의 승가대학인 나란다 대학과 제 2경전 결집지인 대림정사로 향했다. 파트나시 남쪽 바라기온 지역에 있는 이곳은 세계 최고(最古)의 대학으로 잘 알려져 있다. 5세기초 굽타왕조에 의해 창건된 이 절은 전성기인 6~7세기 때 1만여 명이 공부했을 정도로 세계 학문의 중심지였다. 타클라마칸사막과 파미르고원을 넘어온 현장법사도 이곳에서 5년간 수학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발길은 인도 최대 규모의 탑이 있는 케사리아 스투파와 춘다가 공양을 올렸던 집터로 발길을 옮겼다. 바이살리를 향해 가는 도로 왼쪽으로 평지 한 가운데 작은 산처럼 솟은 발우탑이 보인다. 부처님은 대열반의 여정에서 바이살리 근교 벨루바(Beluva) 마을에서 마지막 안거를 나셨다.

다시 발길은 춘다의 공양터로 향했다. 부처님께서는 바이샬리를 출발해서 오시다가 춘다의 공양을 받으시고 그 음식을 드시고 큰 병을 얻으셨다. 그리고 카쿠타 강에서 마지막으로 목욕을 하시고 이곳 쿠시나가라 사라나무 숲에 이르러서 그날 밤에 열반에 드셨다.

쿠시나가라 열반당에서 우리회원들은 부처님께 가사공양을 올리고 간절하게 기도를 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3월 인도의 날씨답지 않게 폭풍이 몰아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희유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다시 우리의 발길은 부처님의 탄생성지인 네팔 룸비니로 갔다. 마야대비 사원에서 부처님이 탄생하신 그 장소에서 기도를 올렸다.

순례 마지막 날 우리 일행들은 2012년 선묵혜자 스님이 네팔 룸비니에 설립한 선혜 초등학교로 갔다. 처음에는 열악한 환경이었으나 현재에는 룸비니지역에서 가장 공부하고 싶은 학교로 알려져 있다.

2015년 3월 초, 국립초등학교로 승격되어 현재 네팔 교육부에서 파견된 교장이 관리를 맡고 있고 유치원부터 4학년까지 공부를 하고 있는 곳이다. 선묵혜자스님과 108산사순례회원들이 교육 불사를 위해 매월 학교발전 기금과 학용품 등을 보내고 있다.

해맑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자 그동안 교육 불사가 아주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자비와 우리 회원들의 정성으로 인해 그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게 될 것이다.

우리 108산사순례기도회는 열흘간의 긴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참으로 성스러운 순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