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명

불교교리

Home > 군종 > 불교수행

게시글 검색
누구나 행복하게 살길 서원
108산사 조회수:921
2013-07-05 11:46:02
십업설(十業設)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선업(善業)보다는 악업(惡業)을 더 많이 짓고 산다. 선업을 지으면 선한 과보(果報)를 받고, 악업을 지으면 악한 과보를 받는다는 게 불교의 업(業)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선업을 짓지 못하고 악업을 짓고 사는 까닭을 부처님은 사람이 무지와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하셨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업보(業報)는 인간의 의지에서 비롯된 행위인 업(業)과 그에 따라 후에 나타나는 반응(결과)인 보(報)를 더한 말인데 결국 업설은 이렇게 인과율(因果律)에 입각한 실천윤리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은 중생들이 무명에서 깨어나 깨달음에 도달하려면 악업을 타파하고, 선업을 지어야 한다며 중생이 짓는 업을 십선업과 십악업이라고 가르쳤다. 십악업은 몸으로 짓는 세가지 악업인 살생·투도(도둑질)·사음(음탕한 행위), 입으로 짓는 네가지 악업인 망어(妄語, 거짓말)·양설(兩舌, 이간질)·악구(惡口, 욕)·기어(綺語, 꾸민 말), 의지로 짓는 세가지 악업인 욕심(貪)·성냄(瞋)·어리석음(痴)이다.

십선업은 십악업을 부정하는 것으로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양설, 불악구, 불기어, 무탐, 무에, 정견 등이다. 하지만 이런 십선업은 소극적 의미의 십선업이며, 적극적 의미의 십선업이 되려면 불살생은 방생, 불투도는 보시가 되어야 한다.

십업 중에 근본이 되는 업은 의지로 짓는 삼업이다. 부처님은 업이 사람의 의지에서 작용해, 말 또는 행동으로 나온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사람의 의지가 작용하지 않은 업은 ‘不故作業’이라 하여 보(報)를 받지 않는다고 설했다.

그렇다면 선업과 악업의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사회윤리적 측면에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업설의 인과율로 설명이 되지 않은 현상도 있다. 악한 행위로 부를 축적해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불교에서는 전생의 업을 금생에, 금생의 업을, 내생에 받는 삼세업보설(三世業報設)로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