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명

불교교리

Home > 군종 > 불교수행

게시글 검색
이달의 선지식(善知識)_1.문수보살
108산사 조회수:254
2017-02-21 11:46:47
1. 문수(文殊)보살을 만나다


선재동자는 첫 번째 선지식인 문수보살에 의해 진리의 세계에 눈을 뜬다. 그리하여 발심을 하고 구도의 길에 들어가 문수보살의 권유에 따라 선지식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선재동자가 이렇게 구도자인 보살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게 된 것은 그가 문수보살의 가르침에 의해 올바른 신앙을 확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재동자는 문수보살의 교화에 따라 보살행 최초의 수행과정인 ‘믿음의 경지[信位]’를 확립하였다.

화엄경(華嚴經)이 보살도의 토대가 되는 믿음을 문수보살에 의해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만나고 비로소 발심(發心)하였다고 하는 것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면 선재동자는 결코 발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발심은 우선 믿음을 전제로 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이 문수보살과 관련해서 설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문수보살은 깨달음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광명은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는 장애가 없는 빛이다. 그러므로 모든 세계에서 진실을 밝히는 기능을 하여, 세계의 참모습[實相]을 밝히고 어리석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깨뜨리는 것이다. 부처님의 광명은 바로 지혜의 광명으로서 중생을 깨닫게 해서 그곳에 깨끗한 믿음을 생기게 한다.

문수보살은 바로 이러한 부처님의 지혜의 작용을 상징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대지(大智)문수보살이라 불린다. 그리고 문수보살이 사자를 타고 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내는 것은 용맹스럽게 진실을 밝혀서 중생의 무명을 없애준다는 것을 상징한다. 문수보살의 가르침은 진실 된 것으로서 진실에 눈을 뜨게 해주기 때문에 진실로 믿을 수 있게 된다.

불교에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진실 된 것, 올바른 것이 믿음의 대상이 된다. 진실하고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믿고, 그 도리를 따름으로써 밝은 인생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불교에서 믿음은 진리에 대한 확신과 의심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한 바른 이해가 뒷받침되어 있다. 깨끗해진 마음에서 나오는 뛰어난 이해력이 진정한 믿음의 내용이 된다. 마음이 맑음으로 진실을 파악할 수 있고, 그 진실이야말로 인간생존의 진정한 귀의처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불(成佛)을 지향해 나아가는 수행을 완성해서 여래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여러 가지 선행(善行)도 믿음에서 시작된다.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이다. 일체의 모든 선법(善法)을 길이 양육하며, 의심의 그물을 끊어버리고, 애욕에서 벗어나게 하며, 열반의 위없는 도를 열어 보인다. 믿음은 혼탁한 때가 없어 마음이 청정하며, 교만함을 없애주고 공경 받는 근본이 되며, 또한 진리의 창고에 제일의 재물이 되며, 청정한 손이 되어 여러 행을 받는다. 믿음은 능히 은혜롭게 베풀어 인색하지 않고, 믿음은 환희하여 불법(佛法)에 들어가게 하며, 믿음은 지혜 공덕을 자라게 하며, 믿음은 여래의 경지에 반드시 이르게 한다.

믿음은 모든 감각기관을 깨끗하고 밝게 하며, 믿음은 견고하여서 파괴할 수 없으며, 믿음은 번뇌의 근본을 길이 멸하며, 믿음은 부처님 공덕으로 향하게 한다. 믿음은 경계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환난을 멀리 여의어서 어려움이 없으며, 믿음은 능히 여러 마군의 길을 뛰어넘어 위없는 해탈의 길을 나타내 보인다. 믿음은 썩지 않는 공덕의 종자가 되며, 믿음은 보리(菩提)나무를 생장시키며, 믿음은 가장 훌륭한 지혜를 더하게 하며, 믿음은 능히 일체 부처님을 나타내 보인다.

선재동자가 지난 날의 어두운 삶을 참회하고 새롭게 살아갈 것을 발원하며 바른 길로 인도해주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청하는 것을 듣고 난 문수보살은 그가 이미 보리심(菩提心)을 발해서,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보살행을 묻고 보살도를 닦으려 하는 마음을 칭찬하면서 “선지식들을 가까이하고 공양하는 것이 온갖 지혜를 구족하는 첫째 인연이기 때문에 이 일에 고달파하는 생각을 말라.”고 당부한다.

문수보살이 선재동자에게 가장 먼저 선지식을 친근(親近)하고 공양할 것을 권하면서 결코 이 일에 고달파하는 생각을 내지 말라고 강조하는 것은 보살도를 닦아 나아가는 데에 선지식의 의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다. 진실로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은 모든 대승경전 가운데서 선지식의 의의와 그 중요성을 가장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수보살의 가르침은 분명히 선재동자의 구도 과정 전체를 일관하는 근본정신이다. 선재동자가 많은 선지식을 차례로 찾아가는 것도 이러한 입장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결코 없다. ‘선지식을 구하고, 선지식을 친근하고, 선지식을 공경하고 공양하는 것’은 보살도를 성취할 수 있는 근본태도다.

“보살도를 닦으려면 먼저 선지식을 친견하고 공양하라.”는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받은 선재동자는 다시 보살행을 배우고 닦으며, 보현행을 빨리 원만하게 하는 법을 묻는다. 이에 대해 문수보살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설하는 것이다.

“광대한 서원을 세워서/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고/ 세상 사람을 위하여/ 보살행을 닦나니// 방편바다에 들어가/ 부처의 보리에 머무르면/ 지도하는 스승을 따라 배워서/ 온갖 지혜를 이루게 되리// 그대 모든 세계에 두루하며/ 티끌 같은 겁 동안에/ 보현의 행을 닦아 행하면/ 보리의 도를 성취하리라”

보살행이란 중생들의 괴로움을 없애주기 위해서 닦는 것이며, 스승의 지도를 따라 배워서 온갖 지혜를 이루게 되며, 일체의 시간과 장소에서 항상 모든 중생에게 이로움을 주고 자비로운 행을 펼치는 보현행을 수행하여 도를 성취하게 된다는 것을 설한 것이다. 여기에 보살행을 닦는 목적과 방법이 잘 나타나 있다.

「입법계품」에서 “선지식은 모든 나쁜 길을 널리 구호하며, 여러 평등한 법을 널리 연설하며, 모든 평탄하고 험난한 길을 보이며, 대승의 깊은 이치를 널리 열며, 보현의 모든 행을 널리 닦기를 권하며, 온갖 지혜의 성에 널리 인도하여 이르게 하며, 법계의 큰 바다에 두루 들어가게 하며, 삼세의 진리의 바다를 널리 보게 하며, 여러 성인의 가르침을 보여주며, 모든 청정한 법을 널리 자라게 해준다.”는 바로 선지식의 의의를 밝히고 있다.

선지식을 가까이 하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공덕이 있다. 「입법계품」에서 “선지식이 가르치는 대로 수행하면 부처님이 모두 환희하며, 선지식의 말을 순종하면 온갖 지혜를 갖춘 경지에 가까워지며, 선지식의 말에 의혹이 없으면 모든 선지식을 항상 만날 것이며, 마음을 내어 항상 선지식을 떠나지 않으려 하면 모든 이치를 구족하게 된다.”고 설하고 있다. 선지식이 지혜의 광명을 비추어 주는 근원으로서 부처님을 대신해서 법을 설해주는 존재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선지식을 가까이 하는 의의와 공덕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진실한 세계에 새롭게 눈을 뜬 선재동자가 문수보살로부터 최초로 가르침을 받은 것은 보현행을 닦아서 깨달음을 성취한다는 것과 그 보현행을 갖출 수 있는 도(道)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수보살은 선재동자에게 선지식을 찾는 일에 싫증을 내거나 게으른 생각을 내지 말고, 선지식을 보고는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선지식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고 선지식의 교묘한 방편에 허물을 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서 남쪽의 승낙(勝樂)이라고 하는 나라의 묘봉산(妙峯山)에 있는 덕운(德雲)비구를 소개하면서, 그에게 가서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닦으며, 보살이 어떻게 보현의 행을 빨리 원만하게 하느냐”고 물을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