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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선지식(善知識)_12.선견(善見)비구
108산사 조회수:299
2017-03-03 11:47:05
선견비구는 이승에서 삼십팔 항하의 모래 숫자만큼이나 되는 부처님 처소에서 청정한 범행(梵行)을 닦아 묘한 법을 듣고, 그 가르침을 받들어 행하며 모든 서원을 장엄하고, 모든 행을 닦아서 여섯 가지 바라밀을 증득했다. 보살계 수행계위로는 십행(十行) 중 제1 환희행(歡喜行)이다. 이 환희행은 보살이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보시(布施)하면서 그 마음이 평등하여 아끼고 후회함이 없으며 명예와 과보를 바라지 않고 오직 모든 중생을 기쁘게 하는 행이다.

선재동자는 자행동녀로부터 남쪽 삼안국(三眼國)에 있는 선견(善見)비구를 찾아가 법을 물으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삼안국에 도착한 선재동자는 선견비구를 찾아다니던 중 숲 속을 거닐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선견비구는 한창 나이에 용모가 수려하고 단정하며, 지혜가 넓어 큰 바다와 같아 여러 경계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쓸데없는 움직임과 부질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또 부처님이 행하시던 평등한 경계를 얻었으며, 대비심으로 중생들을 교화하여 잠깐도 버리지 않으며, 일체중생의 이익을 도모하며, 여래의 법 눈을 열어 보이기 위하며, 여래가 행하시던 길을 가기 위하여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자세히 살피며 지나가는 것이다.

이 때 선재동자가 선견비구에게 나아가 엎드려 절하고, 보살행을 배우고 닦는 법을 가르쳐 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선견비구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써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나이도 젊고 출가한 지도 얼마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이승에서 38항하의 모래 숫자만큼이나 되는 부처님 처소에서 청정한 범행(梵行)을 닦았다. 어떤 부처님 처소에서는 하루 낮 하루 밤 동안, 어떤 부처님 처소에서는 칠일칠야 동안, 어떤 부처님 처소에서는 반 달·한 달·일 년·백 년·만 년·억 년·일 겁·불가설 불가설 대겁(大劫)을 지냈다. 그 동안에 묘한 법을 듣고, 그 가르침을 받들어 행하며 모든 서원을 장엄하고, 증득할 곳에 들어가 모든 행을 닦아서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만족하였다.”

선재동자는 또 “선남자여, 내가 이 곳 저 곳을 거닐 적에 잠깐 동안 모든 방위와 세계가 나타났으니 지혜가 청정한 때문이며, 잠깐 동안에 불국토가 깨끗이 장엄되었으니 큰 서원을 성취한 때문이다. 잠깐 동안 중생의 차별한 행이 나타났으니 십력(十力)의 지혜를 만족한 때문이며, 잠깐 동안 불가설 불가설 부처님들의 청정한 몸이 앞에 나타났으니 보현의 행원(行願)을 성취한 때문이다. 그리고 잠깐 동안 세계의 티끌 수와 같은 부처님께 공경 공양하고, 부처님을 법을 받으며, 보살의 수행바다가 앞에 나타나며, 삼매바다가 앞에 나타나게 하는 것 등등은 모두 지혜광명의 서원(誓願)을 성취한 힘 때문이다. 선남자여, 나는 다만 이 ‘보살이 중생의 경계에 따라서 지혜의 등을 밝혀 가는 해탈문[菩薩隨順燈解脫門]’만을 알 뿐이다.”라고 ‘지혜로써 끊임없이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수순등해탈문’ 법문을 들려주었다.

선견비구가 머무르고 있는 국토의 이름이 삼안국(三眼國)인 것은 선견비구가 지혜를 근본으로 해서 살아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삼안은 지안(智眼)·법안(法眼)·혜안(慧眼)으로, 모든 것을 분명하게 관하고, 법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판단하는 안목을 가지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삶을 비유한 것이다.

선견비구가 숲 속을 이리저리 거닐고 있는 것은 생사의 현실세계에 들어가 중생을 제도하고 있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와 같이 현실세계 속에서 지혜를 활용하여 끊임없이 중생의 무명을 밝히는 것이 마치 하나의 등[火登]이 무수한 등에 불을 밝혀 어둠을 몰아내고 광명세계를 열어주는 것과 같기 때문에 보살의 수순등해탈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도 젊고 출가한 지 오래지 않은 선견비구가 이승에서 무량한 부처님 처소에서 청정한 범행을 닦았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발심할 때에 올바른 지혜가 나타나고, 무명을 타파할 때에 한량없는 악업이 소멸하고 한량없는 지혜가 나타나기 때문에 갠지스강[恒河]의 모래 숫자만큼이나 되는 부처님이라고 하고, 청정한 범행을 닦는다는 것이다. 보살행은 이와 같이 청정한 범행을 근본으로 삼아 부처님의 행을 본받아 육바라밀을 적극 실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