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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의 마음 갖으면 집착 빨리 끊을 수 있어
108산사 조회수:914
2015-01-15 11:46:30
네가 만일 그르다 하면 저도 또한 너를 그르다 할 것이니 중도를 취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괴로움이다 -잡아함경-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취하는 두 가지의 극단적인 길이 있다고 하셨다. 그 중의 하나가 육신이 이끄는 대로 쾌락에 빠지는 일이며 또 한 가지는 스스로 고통에 빠져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다. 이 두 가지는 사람이 취해서느 안 될 길이라고 단언을 하셨다. 또한 인간이 쾌락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자신에게 백해무익한 것이며 스스로 고행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자신에게 백해무익한 것이며 스스로 고해에 빠져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것은 자신에게 이익이 없는 아무런 쓸모없는 일이라고 하셨다.

인간이 쾌락과 고행의 그 두 길을 선택하는 것은 사실 육체적인 문제보다 정신적인 곳에 있다. 인간이 타락하기 시작하는 것은 마음의 분별심을 잃어버린 까닭이요, 사람이 스스로 고행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자제력이 부족한 까닭이다. 이 두 가지는 사람이 극단적으로 맨 나중에 취하는 행동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빌면,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쾌락에 빠져 스스로 타락의 길로 가는 것이며, 무지에 빠져 스스로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신을 학대하다가 자살을 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버리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나는 쾌락도 고행도 무익하고 열등한 것이기 때문에 모두 버렸다. 이 두 극단을 버림으로써 중도를 깨닫게 되었고 중도를 깨달음으로써 인간 세상의 일들을 바르게 통찰하고 바르게 인식하는 눈을 뜨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진리를 깨닫게 되었던 것은 모두 중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나와 타인의 관계 사이에 있다. 이 거미줄 같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사랑과 미움, 배신, 질투, 다툼을 경험하게 된다. 때로는 알게 모르게 남의 관계 속에 끼어들어 피해를 입기도 하며 오해를 사기도 한다.

이 같은 관계 속에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중도’와 ‘긍정’이다. 아무리 남이 나에게 나쁜 행각을 했다 하더라도 사랑과 따뜻함으로 그를 대한다면 그 역시 나를 따뜻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대할 것이다.

칼은 칼로써, 욕은 욕으로 돌아오기 마련인 것이 세상사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항상 남을 용서하고 배려를 한다면 세상은 더없는 사랑으로 가득할 것이 분명하다.

불교에서는 마음과 불을 둘이 아닌 하나로 보고 있다. 세상사의 모든 이치를 둘이 아닌 하나로 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불이문(不二門)이다. 선과 악도 마찬가지이다. 선아고 둘이 아닌 하나이며 이것은 우리의 인연에 따라 선도 되고 악도 된다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세상에는 선도 없으며 악도 없다. 거꾸로 이야기를 한다면 선도 있으며 악도 있다. 그러한 선과 악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그 인연을 엮어 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세상사이다. 그러므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항상 극단의 편에서 비껴나 중도의 마음을 가지는 일이 평화를 가져다준다.

항상 남을 꾸짖지만 말고 칭찬을 하라. 고통이 있음으로 해서 즐거움이 있으며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고통이 있음을 깨닫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모든 죄악은 마음의 집착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중도의 마음’을 가진다면 그 집착도 빨리 끊을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