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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기도도량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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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는 곧 내 마음속 산사로의 여행
108산사 조회수:698
2012-12-27 11:45:59
<108산사기도이야기3>사람은 일생 동안 많은 인연들을 만들고 자신도 모르게 수많은 업(業)을 짓는다. 하지만 자신이 지은 업에 대해 제대로 참회(懺悔)조차 하지 않는다. 뒤돌아보면, 우리의 삶은 마치 시간을 여행하듯 느릿느릿 살아 온 것 같지만 찰나처럼 빠르게 흘러가 버린 세월에 스스로 놀란다. 그 순간 우리는 헛되게 보내온 세월에 대해 아쉬움과 후회에 젖지만 그러나 이미 때는 늦다.

108 산사순례는 이렇듯 세상을 살아오면서 자신이 지은 업장을 지우고 세파에 시달려 ‘잃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찾아나서는 길’이다. 때문에 9 년간의 긴 여정은 모든 산사순례 회원들에게 있어 결코 단순한 여행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생은 백년도 살지 못할 정도로 유한(有限)하다. 그러나 부처님의 사상은 무한(無限)하다. 산사를 찾다보면, 우리는 고고한 시간의 흐름 속에 이끼 앉은 탑신(塔身)으로 혹은 아름다운 단청(丹靑)을 머금고 있는 웅장한 전각(殿閣)들을 만난다. 불타(佛陀)의 정신은 2,500년이 흐른 지금에도 한국의 산자락 깊숙이 남아 흐르고 있는 것이다.

산승(山僧)도 출가를 한지 사십 오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산사순례를 하면서 아직도 가보지 못한 사찰이 많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만일, 108산사 순례기도회가 없었다면, 산사에 서린 불타의 정신을 우리는 결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불자들이야 오죽 하겠는가. 이와 같이 산사 순례를 나서는 일은 잃어버린 나를 찾는 여행이며 위대한 불타의 정신을 만나는 뜻 깊은 자리임을 불자들은 가슴 깊이 명심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한해가 저무는 길목에서 우리는 통일 신라 때 영거선사(靈居禪師)가 창건한 성륜산 용덕사를 찾았다. 산기슭에서 쓰러질 듯 천년을 버티고 서 있는 삼층 석탑이며, 도선 국사가 조성한 듯한 석조여래입상과 용의 전설이 깃든 용굴, 고려시대의 작품인 57위의 나한상을 만났다. 그 중에서도 불자들의 시선을 끈 것은 다름 아닌 석조여래입상이다.

석조여래입상은 천년 세월이 무심한 듯 코가 닳고 두 귀가 사라졌지만, 신비로운 빛깔을 머금고 있어 회원들은 저마다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기에 바빴다. 전체를 백분(白粉)으로 칠해 원래의 모습은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소발(素髮)의 머리와 통견(通絹)으로 만들어진 법복(法服), 군의(裙衣)의 주름이 선명했으며 또한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여원인(與願印)의 수인은 매우 뚜렷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하나의 사실이 있다. 이들 불상들은 오늘날의 정교한 불상과는 달리 부실한 장비에도 불구하고 투박하지만 당시 사람들이 불심의 혼(魂)으로 불사(佛事)를 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감동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사순례를 하면서 과거, 우리조상들이 얼마나 깊은 신심으로 불사를 실천하고 있었던가를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부처님의 가피도 얻을 수가 있다.

나는 회원들과 다니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심심찮게 듣는다. 그중에서도 한 불자의 이야기가 귀에 속 들어왔다. 누구나가 다 첫 108 산사순례를 할 때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인데 아마 그 회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날은 진신사리가 있는 영축산 통도사를 순례할 때였다. 한 회원이 출발지점을 잘못 알아 엉뚱한 곳으로 갔다가 그만 차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신심이 두터운 그는 순례를 포기하지 않고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통도사를 향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쯤 지났을까? 창밖을 보니 108산사 순례기도회 차량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너무나 반가워 차창 밖을 향해 손을 마구 흔들었다. 고속버스가 다음 휴게소에 닿자 이내 순례기도회 버스로 바꾸어 타고 통도사에 무사히 당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날 그 회원은 부처님이 자신에게 산사순례를 제대로 하도록 어떤 가피를 내려주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단 1회도 빠짐없이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108산사순례기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