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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기도도량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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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 도량서 옛 스님들의 덕화를 입다
108산사 조회수:615
2013-02-04 11:46:07
2월 봄이 오는 길목, 백양사로 가는 겨울의 마지막 순례길. 봄을 재촉하는 비가 이른 새벽부터 추적추적 내렸다. 잔가지에 앉은 물방울들이 마치 꽃망울을 머금은 듯 반짝거리며 한 장 사진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회원들은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고 형형색색(形形色色) 걸어서 산사로 올라갔다.

좀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거세게 쏟아졌다. 회원들은 폭우에도 아랑곳없이 저마다 오백년 먹은 갈참나무와 고로쇠나무들이 서서 있는 산길을 지나 부처님을 만난다는 기쁨으로 옷이 젖는 지도 모르고 파안대소(破顔大笑)하며 걸었다. 나는 그러한 회원들의 지극스런 모습을 보고 이내 가슴이 뭉클해 졌다.

법회를 시작하면서 회원들에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히려 역경 속에서 더 잘되는 것이 수행이다. 오늘 우리는 겨울의 마지막 길목에서 봄비를 맞았다. 이 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오늘 내리는 봄비는 법우(法雨) 다름 아니다”라고 법문을 건넸다.

어떤 회원들은 꽃 단비처럼 법우가 내린다는 ‘우화루(雨花樓)’ 처마 밑에 앉아 기도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극락보전 앞에서 아예 우비를 걸친 채 비를 맞고 기도를 하는 분들도 있었다. 대단한 불심(佛心)이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지극정성이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기도였다. 나는 그런 그들이 있기에 무한한 기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백양사는 우리나라의 오대총림중의 하나로써 고불총림(古佛叢林)으로 불린다. 1,400여년 전 백제 무왕 때 지은 고찰로 대한팔경(大韓八景)의 한곳이며 그동안 수없이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했던 운문암이 특히 유명하다. 또한 이색과 정몽주, 정도전이 시문을 지어 붙였던 쌍계루도 있다. 고려시대 때는 암석이 모두 흰색이라서 백암사(白巖寺)로 부르기도 한곳이다. 조선 선조 때 환양 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듣고 7일간의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속에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절을 하였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 고쳐 불렀다. 더욱이 백양사는 오늘날 수많은 수행납자들을 길러내는 총림이다.

또한 백양사하면 빼놓을 수 없는 스님이 계시는데 바로 만암 스님과 서옹 스님이다. 만암 스님은 백양사 전체 역사를 통해 가장 돋보이는 불사를 일구어 냈던 스승으로서 한국근대불교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스님의 중창 불사는 사찰의 자급자족을 철저하게 주창하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스님은 양봉(養峰) 또는 죽기(竹器)를 통해 불사 자금을 조달해 나감으로써 훗날 ‘반선반농(半禪半農)’의 실천자로 추앙받았다. 또한 서옹 스님은 조계종 제 5대 종정을 역임하셨으며 생전에 동양최고의 선지식으로 추앙받으셨던 분으로서 좌탈입멸하셨다.

이렇듯 우리가 산사순례를 다니는 곳은 한국불교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성지(聖地)임을 알아야 한다. 그곳에서 봄비를 맞으며 108 불공 올리며 108배하며 108선행을 하는 것도 대단한 행운인 것이다.

나는 이번 백양사 순례에서 한 초등학생 불자에게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강북 9법등 회원 중의 자제로서 내가 수계씩 때 진성이라는 법명을 내렸었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3년 동안 순례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백양사 순례 날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상무대의 형님들에게 초코파이를 전하는 모습은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그 아이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남을 존경하고 돕고, 선행하며 거짓 없이 사는 부처님의 말씀을 이미 스스로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미래 불자의 참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매우 흐뭇했다. 이처럼 우리 회원들도 가끔은 가족들이나 아이들을 이끌고 한번 쯤 순례에 참석하는 일도 좋은 일이다.

【108산사순례기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