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명

53기도도량순례

Home > etc > 53기도도량순례

게시글 검색
선불교 종지 ‘실상선원’ 개금불사 동참도
108산사 조회수:716
2013-02-04 11:46:27
‘108산사순례 기도회가’ 47번째로 순례한 동학사의 ‘실상선원’은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스님께서 ‘문필봉’을 바라보며 무비공(無鼻孔)인 ‘콧구멍 없는 소’인 태평가로 오도를 하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 승가대학 4학년 이상의 학인들과 석사과정에 있는 학림(學林) 스님들에게만 개방하는 곳으로 철저하게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나는 이 특별한 곳에서 산사순례 회원들에게 3일간 염주보시를 하였는데 매우 의미 깊은 순례 길이었다.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
문득 콧구멍 없는 소라는 말을 듣고/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몰록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서/ 일 없는 사람 태평가를 부르네.’

경허스님은 왜 ‘무비공’으로 깨달음을 얻었을까? 대개 선가(禪家)에서는 선사들의 오도송을 해석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법도(法道)다. 이 게송 속에는 경허스님의 자유자재하고 무애(无涯)한 가풍(家風)이 서려 있다.

하루는 경허 스님의 시자 학명 도일이 아랫마을에 내려갔다가 어느 처사와 잠시 다담(茶談)을 나누었다. 이 때 처사가 하는 말이 “중이 중노릇 잘못하면 중이 마침내 소가 됩니다”고 하였다. 시자는 이 말을 듣고 “중이 되어 마음을 밝게 하지 못하고 다만 신도의 시주만 받으면, 소가 되어서 그 시주의 은혜를 갚게 됩니다”고 대답했다.

이때 처사는 “어찌 사문의 대답이 이렇게 꽉 막혀 도리에 맞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하고 꾸짖었다. 시자가 물었다. “나는 선지(禪旨)를 잘 알지 못하여서 그러하오니 어떻게 대답하여야 옳습니까.” 처사가 대답했다. “어찌 소가 되어도 콧구멍 뚫을 곳이 없다고 이르지 않습니까?” 이에 시자는 더 이상 대답을 못하고 동학사로 돌아와 경허 선사를 찾아가 예를 갖추고 앉아서 처사의 말을 전하였다.

이 순간 경허스님은 ‘소가 콧구멍이 없다’는 말에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다. 경허스님은 무슨 연유로 인해 대오하셨을까? 문필봉은 모양이 붓 끝처럼 뾰족한 산을 말하는데 삼각형 형태와 비슷하다. 이러한 문필봉이 있는 곳에서는 그 봉우리의 영향을 받아 인근 지역에 학자와 인물이 많이 배출된다고 한다. 경허스님께서 동학사에서 오도를 한데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동학사 실상선원과 특별한 인연이 서려있는 경허스님.

그런데 ‘108산사순례기도회’가 법회를 마친 뒤 문필봉 산봉우리에 장엄하게 일원상 무지개가 떠올랐다. 동학사 승가대학 학장 법성스님, 주지 견성스님 이하 대중스님 학인·학림스님들은 환희심에 찼다. 참으로 예사롭지 않은 현상이었다. 비록 귀향 때문에 회원들은 그 장엄한 일원상 무지개를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산 정상에 우뚝 솟은 무지개는 말로다 표현 할 수 없는 환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한국 선불교의 종지(宗旨)가 서린 경허스님의 실상선원에서 바라본 일원상 무지개는 화엄의 화장세계 다름이 아니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꽃을 보이자 가섭은 말없음의 미소로 선(禪)을 알렸듯이, 어쩌면 경허스님과 부처님은 문필봉의 무지개로 108산사순례기도회의 개금불사에 대한 고마움의 화답(和答)을 주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108산사순례 기도회 회원들이 자신 있게 내 세울 수 있는 것은 지극한 신심이다. 이번 동학사 대웅전 삼존불 개금불사에 모두 빠짐없이 십시일반으로 동참한 우리 회원들의 지극 정성에 나는 너무도 큰 고마움을 느낀다. 이런 모습이 바로 ‘21세기 신행문화의 패러다임’으로 호평을 받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장대 같은 비속에서 장중하게 울리는 ‘108법고’를 들으며 회원들은 모두 합장을 했다. 나는 회원들이 탄 버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이 진정 이 시대의 보현행자들임을 느낄 수 있었다.

【108산사순례기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