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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순례 회향은 두타행 실천과 같아
108산사 조회수:746
2013-02-04 11:46:44
제52차 108산사순례 동해 두타산 삼화사(三和寺)로 가는 서울역 대합실, 회원들이 밤 열차에 몸을 실었다. 차창밖 먼 민가의 불빛들이 짙은 어둠속에서 새록새록 아름답게 반짝인다. 더러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더러는 차창 밖을 내다보며 겨울의 정취에 마음껏 젖어 있다. 오랜만에 기차로 산사순례를 떠나는 회원들의 마음은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밤기차는 밤새 달려 이른 새벽 정동진역에 닿았다. 동해바다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귓불에 스치자 얼얼하다 못해 화끈하다. 회원들은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방생법회에 참석했다. 저마다 손에 든 소원성취 연등 촛불을 모래사장위에 하나씩 놓자 어느새 ‘선묵혜자 스님 108산사기도회’ 문구가 어둠속에서 아름답게 시구처럼 펼쳐졌다. 한해를 보내고 새롭게 한해를 맞이하는 소원성취 방생법회를 끝내자 붉은 아침해가 한폭 그림처럼 목선위에서 아련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슴 뭉클한 장광이었다. 회원들은 연신 사진을 찍거나 소원을 빌었다.

무릉계곡이 있는 두타산 삼화사로 가는 관광버스를 탔다. 두타산은 인도 초기불교의 두타수행과 깊은 관련이 있다. 불교에서 두타(頭陀)란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심신을 수련하는 것을 말한다. 초기 인도의 수행자들은 수행을 철저하게 하기 위해 열두 가지 두타행을 실천으로 삼았다. 인가(人家)와 떨어진 조용한 숲 속에 머물면서 수행을 하고 항상 걸식을 하며 걸식할 때는 빈부격차를 가리지 않으며 하루에 단 한번만 음식을 먹고 과식하지 않고 점심 이후에는 과실즙이나 꿀 등도 먹지 않고, 헌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으며 삼의(三衣) 이외에는 소유하지 않는다.

또한 무상관에 도움이 되도록 무덤 곁에 머물고 나무 밑에 거주하거나 지붕이 없는 곳에 앉고 단정하게 앉아 눕지 않는다. 수행자들은 불교 초기에는 잘 지켜졌으나 나중에는 산이나 들, 세상을 편력하며 고행하고 수행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는데 가섭존자가 두타제일로 칭송되었다. 우리가 ‘산사순례’를 회향하는 것도 이 두타행을 실천하는 것과 같다. 부처님 앞에 참회의 기도를 올리고 남을 위하고 도우며 번뇌의 때를 버리고 탐욕의 옷을 벗는 것도 하나의 수행(修行)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날마다 좋은날을 만들고 날마다 부처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삼화사 일주문 입구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탄허 선사가 쓴 편액이 눈앞에 들어온다. 산이 마치 일주문을 이고 앉아 있는 것 같이 당당한 위용(威容)과 거칠면서도 힘이 있는 필체이다. 회원들은 아름다운 산길을 따라 일렬로 오른다. 이마에는 송글송글 구슬땀이 맺힌다.

삼화사는 월정사의 말사로서 신라시대 (선덕여왕11)때 자장 스님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이곳에 절을 짓고 흑련대(黑蓮臺)라 하였다. 그 후 범일국사가 중창 삼공암(三公庵)이라 하였다가, 고려 태조 때 삼화사라고 개칭하여 많은 부속암자를 지었다. 조선시대 때 절이 크게 확장되고 일제 때 왜병에 의해 소실되어 중건되었다가 1977년 중대사(中臺寺) 옛터인 무릉계곡의 현 위치로 이건(移建)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약사전을 비롯하여, 문화재로 신라시대의 철불, 3층 석탑 및 대사들의 비와 부도가 있다.

삼화사하면 국민관광지로 알려진 무릉계곡을 빼 놓을 수 없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전설에 따라 ‘무릉도원’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하는 이 계곡은 기암괴석과 무릉반석, 푸른 못 등으로 유명하다. 고려시대에는 이승휴가 머물며 ‘제왕운기’를 집필하였고, 이곳을 찾았던 많은 시인 묵객들의 기념 각명(刻名)이 무릉반석(盤石)에 새겨져있다. 삼화사가 전국기도처로 알려진 것은 철불 노사나불의 위용 때문이다. 골동품 상인이 이 철불을 훔쳐 도망을 갔다가 어느 기자의 꿈에 나타나 되찾은 이 기이한 실화는 부처님의 영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산사순례는 지독한 겨울 추위에도 불구하고 많은 회원들이 참석을 해 주어 흐뭇하다. 기도란 아무리 힘들고 추워도 해야 한다. 그것이 곧 수행인 것이다.

【108산사순례기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