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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기도도량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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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열차를 타고 희방사를 찾다
108산사 조회수:669
2013-02-04 11:47:22
무궁화열차를 타고 가을 소풍가는 기분으로 소백산 희방사에 제 61차 108산사순례를 갔다. 이른 새벽 여섯 시, 열차가 움직이자 모두들 어린 시절 수학여행을 가는 것처럼 들떴는지 어린 아이같이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비단, 추억은 아이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어른들에게도 아름다운 추억은 있다. 그 추억은 때론 느릿느릿하게 기억 한쪽을 붙잡고 있다가 열차처럼 빠르게 달려가다가 흩어진다. 하지만 인생의 속도는 세월과 무관하게 너무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꼭 1년에 한 두 번은 반드시 열차로 산사순례를 떠나는 계획을 잡는다. 오손 도손 마주 앉아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누며 떠나는 기차여행의 기분은 버스와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건상 자주 떠나기는 힘들다. 세 시간을 지나 풍기역에 닿았다. 등에 배낭을 메고 분홍빛 산사순례 단복을 입은 회원들이 삼삼오오 역전을 빠져나오자 풍기 인삼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번도 풍기시장의 초대로 달려왔다. 어디선가 인삼냄새가 공기 가득 흘러나왔다.

회원들은 30분 이상 산길을 걸으며 가을정취를 즐겼다. 초가을이라 산 아래는 나뭇잎이 푸르더니 높이 올라갈수록 붉은 단풍잎이 눈에 띄었다. 어떤 곳은 아침 서리가 얼핏 내려 앉아 있었다. 소백산 꼭대기 산자락에 나지막하게 그림처럼 앉아 있는 희방사는 오육십 대의 회원들에겐 결코 만만한 산행이 아니었다. 기온도 급격하게 떨어져 매우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의 이마에는 어느새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멀리서 108산사순례기도회를 맞이하는 희방사의 동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동종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처럼 아련하게 귀가에 닿다가 이내 파도처럼 곱게 부서졌다. 깊고 여운이 깊은 종소리였다.

앞마당에 앉아 곧 기도에 들어갔다. 천수경 독송을 끝내고 회원들은 내가 한자 한자 불러주는 데로 신묘장구 대다라니 사경을 했고 끝나자 108참회 기도소리는 산자락에 은은하게 퍼졌다.

‘보살도를 구하는 나는 탐욕을 버리고 중생을 제도하나이다. 보살도를 구하는 나는 진흙 속에 피는 연꽃 같이 세속에 있으면서도 세속에 속박되지 않겠나이다. 반야의 보리심을 일으켜 6바라밀을 닦아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나이다.’ (108 참회문 43-45절)

쌀쌀한 날씨와 좁은 절 마당에도 불구하고 전각 곳곳에 앉아 여느 때와 같이 5천여 명의 회원들은 희방사 대웅전 부처님을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작은 산사에 이토록 많은 불자들이 한꺼번에 모여 기도를 하는 터라 소백산이 다 흔들리는 것 같았다.

희방사는 신라선덕여왕(643년) 때 두운조사가 소백산 남쪽 기슭에 창건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선조 1년(1568년)에 새긴 ’월인석보’ 1·2권의 판목과, 훈민정음 원판, 월인석보 판목 등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아쉽게도 6·25 전쟁으로 소실되어 현재 월인석보 책판만을 보존하고 있다. ’월인석보’는 수양대군이 세종의 명으로 석가세존의 일대기를 국문으로 엮은 ’석보상절’과 세종이 석보상절을 보고 석가세존의 공덕을 찬송하여 노래로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합친 불경언해서이다. 더불어 희방사가 수행처로 많이 알려진 것은 큰 스님들이 마지막에 수행을 하셨던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해발 850여 미터 오지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산사에, 그것도 노(老)보살님들이 살아 있는 동안 어쩌면 쉽게 와 보지 못할 이곳에서 기도를 하는 것도 하나의 작은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108산사순례 기도회가 희방사에 순례를 온 의미는 매우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방사 주지 설송 스님은 “큰스님들의 마지막 수행처가 이 소백산일 만큼 기운이 좋은 곳이니 여러분들도 희방사 기도를 통해 원하는 바를 이루어 가시길 바란다”며 인사의 말씀을 하셨다. 나는 설송 스님과 108산사순례 방문 기념 나무를 심고 동종을 함께 울렸다. 그 소리는 다시 소백산 가을 산자락에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참으로 의미 깊은 가을 산사순례였다.

【108산사순례기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