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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순례, 잃어버린 마음 찾는 수행 여정
108산사 조회수:708
2013-02-04 11:47:26
우리가 산사순례를 떠나는 궁극적인 목적은 세상 속에서 버려진 나를 찾고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나서는 데에 있다. 내가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순례기도회’라고 명칭을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5년간의 순례 끝에 우리가 찾아 나선 그 마음은 과연 어디에 있으며 그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본래부터 인간은 불완전하며 오직 절대자의 진리에 의해 행복과 평안을 구할 수 있다는 여타의 종교와는 달리, 불교의 이상적 개념은 인간이란 존재는 본질적으로 깨끗한데 살아가면서 욕망과 화냄, 어리석음이라는 삼독 때문에 고뇌 속에 빠지게 되어 중생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이를 벗어나 열반을 얻은 부처가 되기 위해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닦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불교적 개념과 우리 ‘108산사순례기도회’의 목적을 가만히 비교해 보면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현재 고통과 번뇌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고 있다. 고뇌 속에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삶이며 이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사는 길은 또한 없다. 그러나 마냥 그렇게 산다면 이 세상은 폭력과 치정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어 마음 놓고 안심하고 살 수가 없다. 종교의 가치는 이러한 무한치정의 세상을 올바른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여 서로가 행복하게 살자는 데에 있다.

내가 108산사순례를 9년간이나 설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 있다. 길고 긴 그 시간 동안 부처님께 날마다 공양을 하고 기도를 하면서 살게 된다면 아무리 삼독에 깊게 빠진 사람일지라도 정화(淨化)가 되고 마침내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자신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었던 불성(佛性)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하는 9년간의 긴 장정도 이런 점에서 하나의 수행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수행의 척도는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잃어버린 본성인 마음을 되찾는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불교 수행에 있어 중요한 문제는 교의적인 수학(修學)보다는 자신의 근기에 따른 수행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우리 회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간곡한 부탁은 끊임없는 ‘방하착(放下着)’을 하며 살라는 것이다. 즉 ‘놓고 살라’이다. 욕심도 내려놓고, 화냄도 내려놓게 되면 자신을 괴롭히는 비이상적인 마음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결국에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행복해진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방하착을 할 수 있을까? 선자(禪者)들은 이것을 두고 ‘무념(無念)’, 무주(無主), 무소유(無所有)‘의 수행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불(佛),법(法), 보살(菩薩) 등 이상적 존재조차도 찾지 말라고도 한다. 무념은 집착을 끊어내는 방법이며, 무주란 나를 버리는 방법이며 무소유는 탐욕을 끊어내는 방법이다.

사람이 집착을 하게 되면 어느 대상에 한 생각이 끊임없이 머물게 되어 바른 이치를 판단하지 못하게 되고, 또한 그것 때문에 고뇌의 삶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념, 무주,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이 곧 ‘방하착’인 것이다. 우리가 108산사순례를 나서는 목적 중의 하나도 ‘방하착’이라 할 수 있다. 놓고 비우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나라는 생각, 나라는 아상(我相)이 사라지게 되고 결국 참된 나를 찾을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108산사순례에 가서 세상의 모든 욕망과 고뇌, 그리고 번뇌를 다 던져버리고 나면, 자신을 옭아매던 사소한 걱정도 이내 다 털어버리게 된다. 수행이란 결코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날마다 부처를 생각하고, 내가 부처임을 생각하고, 남이 부처임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 다툴 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산사순례는 마음속에 무언가를 채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무언가를 비우러 가는 길임을 모두 알아야 한다. 비움의 연속이 되면 모든 것이 빈 그릇처럼 깨끗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108산사순례기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