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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기도도량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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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업의 소멸은 자신 만이 할 수 있다
108산사 조회수:813
2013-02-04 11:47:30
한해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다 한해의 끝점에서 후회와 참회를 반복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108산사순례’를 통해 부처님을 만나고 열심히 기도를 하며 새로운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경전에 ‘나를 버리는 일이 곧 부처가 되는 길’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라는 의식을 지우는 순간부터 마음에 든 탐진치 삼독(三毒)이 사라지고 더불어 성불의 길로 나아갈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산사순례는 곧 ‘나’라는 의식을 지우는 머나먼 여행이며 이를 통해 마침내 열반의 경지에 들어서게 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음만이 곧 열반이 아니라, ‘나’라는 의식을 지우는 순간부터 우리는 해탈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해탈이란 깨달음이 아니라, 몸속에 든 성냄과 욕심 어리석음을 지우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산사순례에 가서 참회의 시간을 갖고 지난 한해 ‘잘 살았는가 못 살았는가 그럼, 어떻게 살 것인가?’ 참회하고 자숙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쯤에서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상의 지혜를 구족하고 계시지만, 부처님조차도 해결할 수 없는 삼불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불능은 ‘불능면정업중생(不能免定業衆生)’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지은 정업을 스스로 고칠 수 없는 중생은 부처님조차 제도하기 어렵다는 뜻인데 자신이 지은 죄업의 소멸은 반드시 자신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몸과 입, 그리고 마음으로 얼마나 많은 업을 쌓았는지를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산사순례를 가는 목적도 자신이 지은 업을 스스로 풀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 불능은 ‘불능도무연중생(不能度無緣衆生)’입니다. 인연이 없는 중생은 제도하기 어렵다는 말인데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숙업과 근기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지만 ‘불법과 인연이 없는 중생은 제도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 9년 동안 108산사순례’를 비가 오나 눈이오나 추워나 더워나 가서 ‘108염주’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도 어쩌면 숙세의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불능은 ‘불능진중생계(不能盡衆生界)’으로 부처님조차 모든 중생계를 다 제도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위대한 부처님일지라도 힘이 다 미치지 않는 곳이 있고 중생을 모두 제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진 숙업의 인연은 자기 자신이 그 매듭을 스스로 풀고 나아가 착함을 추구하는 중생만이 제도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법화경’방편품에 보면 ‘부처님이 말씀하셨을 때 회중의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오천 명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부처님 계신 곳에서 퇴장하였다. 왜냐하면 이 무리들은 죄의 뿌리가 깊고 무거우며 증상만으로서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하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했다고 하는 과실이 있기 때문에 세존께서는 묵연히 말리시지 않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무리 귀중한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아상(我相)에 젖어 스스로 받아드리지 않는다면, 위대한 설법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조차도 성도(成道)직후에 “욕망에 탐착하는 세간의 습관과는 역행되는 해탈의 가르침을 어떻게 설할 수 있겠는가”라고 깊은 고민을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이 삼불능은 사람들이 ‘세간의 습관’과 역행되는 해탈의 가르침을 설하기 위한 부처님만의 위대한 고뇌이자 시련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108산사순례를 나서는 궁극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이 지은 정업을 스스로 풀고, 또한 불법을 만나 나와 이웃을 제도 하고 또한 선을 추구하기 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회원들은 이 부처님의 삼불능을 항상 가슴 깊이 새기고 있어야 하며 ‘108산사순례’의 인연 또한 전생의 법연(法緣) 때문임을 우리는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108산사순례기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