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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기도도량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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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우는 108순례
108산사 조회수:890
2013-03-13 11:48:26
요즘 내가 거처하고 있는 북한산 산길을 걷다보면, 아무 것도 날 것 같지 않은 바위틈이나 맨땅 위에서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새싹들이 돋아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찌 저런 곳에서 풀꽃이 피어날까 의문이 나기도 하지만 새삼 신비롭고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한다는 개나리와 진달래도 봄소식을 던져 줄 편지를 이미 써 놓은 듯 잔뜩 꽃망울을 터뜨릴 기세다. 어디 그것뿐인가. 계곡에는 얼어붙은 물이 녹아 도란도란 흐른다. 청아한 물소리까지 귀담아 듣게 되니 모든 시름들도 다 달아나는 것 같다. 길 위에서 꽃과 풀 그리고, 나무들을 마주하면 내 몸속에도 어느새 파릇한 봄꽃이 피어나는 것만 같다.

그리고 보니 나와 우리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원들은 지난 2월 곡성군 성덕산 관음사 순례 길에서 이미 봄이 오는 소리를 먼저 들은 듯 하다. 어쩌면 지금쯤 그곳에는 연분홍 미선나무, 살구나무, 왕벚나무가 꽃을 피우고 노랑붓꽃, 양지꽃, 민들레 등도 피어났을지 모를 일이다. 이렇듯 남도의 봄은 저만의 색깔과 향기를 풀어 놓고 우리 회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봄이 걷고 걸어서 요즘 내가 사는 북한산에도 당도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산사순례에서 얻는 것은 참으로 많다. 대자연이 빚어내는 사계의 신비를 몸소 체감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이며 처마 밑에 달린 풍경소리가 바람에 흔들릴 때 내가 진정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을 느끼게 되는 것도 소중한 인연들이다. 이것들은 결코 돈을 주고도 못살 귀중한 시간들이다. 산사는 물론 저 나무와 이름 모를 꽃과 바람과 돌과 물소리와도 인연을 맺어 나가는 것이 산사 순례이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헤맨다. 단순히 힘겨운 일상에 묻혀 끊임없이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삭막한 세속에서 위안거리를 찾아 끊임없이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조차 제대로 가지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때에 한 달에 한 번씩 순례자가 되어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큰 축복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나를 비우고, 놓고, 낮추는 법을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산사순례는 참으로 좋은 여행이며 나를 찾아가는 여행인 셈이다.

가끔, 우리는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잊을 때가 많다. 그러나 내 몸뚱이는 한갓 대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저 자기 자신만이 최고인양 생각한다. 이러한 아만으로 인해 자신의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말들을 쏟아내지 못하면 마치 남에게 뒤처지는 양, 타인을 배려하는 말 보다 오히려 변명과 자신을 내세우는 말을 많이 한다. 이것이 바로 구업을 짓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순례 길을 떠나 대자연을 만나게 되면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음을 느끼게 되어 말을 아끼게 되고 타인 또한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 사람은 모든 문제의 원인도 ‘나’로부터 일어나며 주위의 모든 문제와 고민거리도 자신으로부터 일어나게 됨을 알게 된다. 그 순간부터 참회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참회란 간절하게 인정하고 느끼지 않으면 결코 완성될 수 없다. 내가 ‘나’가 아닌 ‘아공(我空)’을 깨닫는 순간부터 참회 또한 진실해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산사순례는 이러한 마음가짐을 배워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 가고 있다. 홧김에 돌이키지 못할 사건사고도 너무나도 많다. 아무런 이유 없이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다가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 이젠 비우고, 놓고, 자신을 낮추어보자.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의 삶에 봄이 찾아오듯 잠시 길을 멈추어 서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자. 이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말이다.

【108산사순례기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