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명

전국108산사도량

Home > 순례안내 > 전국108산사도량

게시글 검색
105. 화계사(華溪寺, 서울 삼각산)
2017-11-01 18:03:11

화계사는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水踰洞) 삼각산(三角山)에 있는 사찰로 서울 시내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산수가 수려하고 산기슭의 울창한 숲에 rkaT여 있어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며 고려 광종 때 법인대사(法印大師), 탄문(坦文)스님이 지금의 화계사 근처인 부허동(浮虛洞)에 보덕암(普德庵)을 창건한 것이 시초이다.

그 후 조선 중종 17년(1522년)에 보덕암의 신월(信月)선사가 서평군(西平君) 이공(李公)과 협의하여 보덕암이 있던 부허동 남쪽의 화계동으로 법당 3처(處))와 스님들의 요사(寮舍) 50칸을 옮겨 짓고 화계사(華溪寺)라고 고쳐 불렀다. 창건된 지 채 100년이 되지 않은 광해군 10년(1618년)화재로 인하여 불전과 요사가 모두 전소되는 비운을 겪고 말았다. 그러나 도월(道月)스님이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가문의 사주를 받아 중창 불사를 하여 이듬해인 1619년 3월에 낙성을 보았다.

 

그로부터 24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비바람에 건물이 쇠락하여 고종 3년(1866년)에 용선(龍船)스님과 범운(梵雲)스님이 흥선대원군의 시주를 받아 불전과 승방 건물들을 중수하였다. 그때 지어진 것이 현재의 대웅전과 큰방인 화장루이다.

 

고종 7년(1870년)에는 용선스님과 초암(草庵)스님이 대웅전을 중수하였고, 고종 12년(1875년)에 화산재근()이 대웅전의 아미타후불탱을, 성암승의(性庵勝宜)가 신중탱, 현왕탱, 지장탱 등을 조성하였다. 1876년에는 초암(草庵)스님이 1875년 궁궐로부터 모셔온 자수(刺繡) 관음상을 봉안하기 위해 관음전을 고쳐지었다. 이 자수 관음상은 1874년 2월에 원자(元子, 뒷날 純宗)가 태어나자 그의 수명장수를 기원하기 위하여 왕비 여흥민씨와 대왕대비 풍양조씨, 왕대비 남양홍씨 등의 발원으로 궁녀들이 수를 놓아 조성해 낸 것이었다. 1910년 12월에는 월명(越溟)화상이 임종에 즈음하여 강원도 양양 소재의 논 276두락을 헌납하니 이로써 만일염불회를 창설하였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1964년에 천불오백성전을 건립하였고, 1972년에는 진암(眞菴)스님이 범종각을 건립하였다. 1973년에는 대웅전 삼존불을 조성하였으나, 이등해 대웅전 오른쪽 관음전이 화재로 소실되는 비운을 겪고 말았다.

 

근래에는 1991년 대적광전을 건립하고, 1992년에는 국제선원을 개원하여 외국인 스님들의 수행처가 되게 하였다. 그리고 1998년에는 일주문을 건립하였고, 2001년에는 성광스님이 명부전을 보수하면서 지장보살상을 개금, 사왕 등을 보수하였다. 2005년에는 대웅전을 보수하였다.

 

화계사는 외국스님들의 수행도량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2004년 입적한 숭산행원(崇山行願)스님의 지대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찰에서 한국 불교의 전통을 익힌 외국 수행자들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한국 불교를 다시 그 나라에 전파하고 있어 화계사 국제선원은 외국 수행자들에게 있어 꼭 한번은 가보아야 하는 수행도량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화계사는 흥선대원군과의 인연이 깊은 사찰이기도 하다. 그것은 화계사에서 장차 왕업을 이루려는 꿈을 꾸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인연은 지금 전설과 함께 명부전이나 화장루에 필적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