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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108산사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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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자재암(自在庵, 동두천 소요산)
2017-11-01 18:26:41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요산(逍遙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신라 무열왕 1년(654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자재암이라고 했다. 고려 광종 25년(974년) 각규(覺圭)대사가 태조 왕건의 명으로 중건하여 소요사로 바꾸고, 의종 7년(1153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각령(覺玲)선사가 대웅전과 요사채만을 복구하여 명맥만 이어왔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고종 9년(1872년) 원공(元空) · 제암(濟庵)스님이 퇴락한 이 절 44칸을 모두 중창하고 영원사(靈源寺)라 하였다.

 

이때 연산전 · 만월보전(滿月寶殿) · 독성각 · 산신각 · 별원(別院)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순종 원년(1907년) 정미의병 때 의병활동의 근거지여서 일본군의 공격으로 불태워졌다. 1909년 성파(性坡))스님과 제암스님이 다시 중창하고 절 이름을 자재암으로 고쳤다.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어 1961년 진정(眞精)스님이 대웅전을, 1968년 성각(性覺)스님이 요사채를, 1977년에는 삼성각을, 1982년에는 일주문을 각각 지었다. 이어 1984년에는 부설 유치원이 개원하였고, 1983~1985년에 오래된 건물이 헐리고 새로운 중창이 이루어지면서 오늘날의 면모르 갖추었다.

 

이 절에는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한다. 원효가 요석공주와 세속의 인연을 맺은 뒤, 이곳에 초막을 짓고 수행에 정진하고 있을 때, 관세음보살이 변신한 아름다운 여인이 유혹을 하였다. 설법으로 유혹을 물리친 원효는 이내 그 여인이 관세음보살이었음을 깨닫고 더욱 수행에 정진하는 한편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절을 짓고 자재암이라 했다고 전한다.

 

또한 태조 이성계가 그 유명한 함흥차사의 골육상쟁을 끝내고 귀경하던 중, 소용산에 이르러 그만 계곡으로 들어가 버렸다는 일화가 있다. 이는 실제적인 역사이야기다.

이에 태종 이방원이 소요산 안에 궁을 지어주었다. 비록 6개월 남짓 머물다가 양주 화양사로 내려가기는 했지만, 이는 엄연한 역사속 한 구절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 · 삼성각 · 나한전 · 일주문 ·백운암 · 요사채가 있는데 전부 1961년 이후의 중창 때 세운 것이다. 경내 및 주위에는 1980년에 세운 속리교와 세심교가 있다.

1909년 중창 때 그린 불화도 많이 남아 있었는데 6.25전쟁 중에 대부분 소실되었고, 1914년 무렵에 그린 칠성탱화만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삼성각에 봉안되어 있다.

 

그밖에 추담대종사 사리탑 및 탑비가 절 입구에 있고, 1985년에 세운 소요산자재암 나한전불사기가 나한전 앞에 있다. 유물은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金剛般若波羅蜜多心經略疎)≫ (보물 1211) 언해본 1책을 제외하고는 전부 최근의 것들이다.

 

절 근처에는 원효와 요석공주의 전설이 얽힌 요석궁지와 조선 태조의 행궁(行宮)터가 있다. 요석궁지는 요석공주가 설총을 키웠다는 곳인데 그 위치는 자재암 부근의 하백운대 부근으로 보인다.

 

옛날 서화담 양봉래와 매월당이 자주 소요하였다 하여 이름 붙여진 소요산이라 했으며, 경내에는 석굴 추담대사사리탑 속리교 세심교가 있고 소요산에는 의상대 · 나한대 · 금송굴 · 선녀폭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