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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108산사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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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실상사(實相寺, 남원 지리산)
2017-11-02 10:27:26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山內面)의 지리산(智異山) 기슭 평지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17교구본사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창건은 통일신라시대인 흥덕왕 3년(828년) 홍척(洪陟)선사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데서 비롯된다. 선종(禪宗)이 처음 전래된 것은 신라 제36대 혜공왕(惠恭王) 때인데, 발전을 못하다가 도의(道義:道儀)국사와 함께 입당(入唐), 수학하고 귀국한 증각대사(證覺大師) 홍척선사가 흥덕왕의 초청으로 법을 강론함으로써 구산선문 중 으뜸 사찰로 발전하였다.

 

도의국사는 장흥(長興) 가지산(迦智山)에 들어가 보림사(寶林寺)를 세웠고, 홍적선사는 이곳에 실상사를 세워 많은 제자를 배출, 전국에 포교하였는데 이들을 실상사파(實相寺派)라 불렀다. 그의 제자로 수철(秀澈) · 편운(片雲) 두 대사가 나와 더욱 이 종산(宗山)을 크게 번창시켰다.

 

조선 세조 14년(1468년) 원인모를 화재로 전소됐다는 기록과 정유재란 때 왜구에 의해 전소됐다는 설이 동시에 전해지고 있다. 화재로 인해 실상사의 승려들은 숙종 5년(1680년)까지 약 200년 동안 백장암에서 기거했으며 절에는 철불, 석탑, 석등만 남아 있었다 한다. 그러다가 숙종26년(1700년) 300여 명의 수도승들과 함께 침허대사가 상소문을 올려 36채의 대가람을 중건했다. 또 순조 21년(1821년) 의암대사가 두 번째 중건을 했으며 고종 21년(1884년)에 월종대사가 세 번째 중건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제3중창건을 하게 된 것은 고종 19년(1882년) 어떤 사람들이 절터를 가로챌 목적으로 방화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실상사는 6.25를 맞아서ᅟᅳᆫ 낮에는 국군, 밤에는 공비들이 점거하는 등 또 한차례 수난을 겪게 됐는데 용케도 사찰만은 전화를 입지 않았다.

 

실상사는 백장암과 서진암, 약수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이곳에는 신라시대의 많은 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국보 제10호로 지정된 백장암 삼층석탑은 전형에 구애를 받지 않은 자유로운 설계를 하고 있어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공예탑이기도 하다.

 

실상사의 문화유적은 백장암3층석탑(국보 제10호), 수철화상능가보월탑(秀澈和尙楞伽寶月塔:보물 제33호),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보물 제34호), 석등(보물 제35호), 백장암석등(보물 제40호), 철조약사불좌상(보물 제41호),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靑銅銀入絲香爐:보물 제420호), 약수암목각불탱(보물 제39호), 백장암석등(보물 제40호), 철조약사불좌상(보물 제41호), 백장암청동은입사향로(보물 제420호), 약수암목조탱화(藥水庵木彫幀畵:보물 제421호), 극락전(지방유형제45호), 위토개량 성책(지방유형 제88호), 동종(지방유형 제138호)등이다.

 

중요민속자료는 실상사 입구의 만수천을 가로지르는 해탈교 양쪽에 세워져 있는 석장승 3기(15호)가 그것이다. 장승은 벅수라고도 하는데 보통 한 쌍으로 세워져 있으나 이곳의 장승은 남녀를 판별할 수 없으며 만수천 양쪽에 원래는 4기가 세워져 있었다. 절을 향해 건너기 전에 세워진 한쌍의 돌장승 중 오른편 장승은 1936년 홍수 때 떠내려가고 없다. 잡귀를 막기위해 세워진 ‘상원주장군()은 두 눈과 코가 크고 둥글며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손은 창을 든 것 같은 모습‘이며 ’대장군()‘은 뒤에 만들어진 듯 이렇다 할 특징은 없다.

실상사에는 이렇듯 호국의 정신이 흐르며 찬란한 신라불교문화의 숱한 문화재가 잘 보존돼 있는 천년고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