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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108산사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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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석굴암(石窟庵, 경주 토함산)
2017-11-02 11:07:10

신라 때 오악(五岳)의 하나인 토함산(吐含山)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석굴사찰(石窟

寺刹)로 불교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우리 불교 문화의 진수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進峴洞) 891번지에 있으며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김대성에 의해 창건되고 석불사(石佛寺)라 불리웠다.

 

석굴암은 통일신라 대상(大相) 김대성(金大城)이 불국사(佛國寺)를 중창(重創)할 때, 왕명에 의하여 착공 혜공왕 10년(774년)에 완성하지만, 774년 김대성이 죽어 신라 왕실에서 완성하였다. 따라서 석굴암은 김대성 개인이 창건했다기 보다는 신라 왕실의 염원에 의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 후 조선 숙종 29년(1703년)에는 종열(宗悅)스님, 영조 34년(1758년)에는 대겸(大謙)스님이 석굴암을 중수했다. 그 후 조선 말기에 울산병사 조예상(趙禮相)에 의해서 크게 중수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1913~15년, 1917년, 1920~23년 3차에 걸쳐 보수되면서 원래의 모습이 많이 손상되었다.

일본인들의 잘못된 보수는 1962~64년에 정부지원 아래 대대적으로 수리되어 석굴의 구조 및 불상들의 위치가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김대성은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세우는 한편,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세웠다. 이는 불교의 인과응보(因果應報) 설화를 기반으로 한 요소가 엿보이는 전설적인 유래이지만, 대사 김문량(金文亮)의 집에 환생(還生)하였다는 김대성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타나듯이 경덕왕대에 중시(中侍)로 있었던 김문량이 실존 인물임에 비추어, 그의 아들인 김대정(金大正)이 신라의 기명(記名) 방식에 의해 대성과 동일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신라인의 믿음과 호국정신의 요람으로서 국찰(國刹)도 같았던 석굴암은 근래 성타, 법달, 종상, 종광 스님등이 주석하면서 굴암이 지니고 있는 신앙적인 측면은 물론, 조형적인 면까지 신라미술의 최고 절정을 이룬 민족 최대의 석조미술품으로 꼽아 결코 손색이 없는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불국사, 팔만대장경, 종묘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