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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108산사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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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상원사(上院寺, 평창군 오대산)
2017-11-02 11:08:06

강원 평창군 진부면(珍富面) 동산리(東山里)의 오대산(五臺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산내 암자로 월정사와는 이웃하고 있다. 원래의 절은 신라 성덕왕 23년(724년)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었고 통도사(通度寺) 등을 창건한 자장(慈藏)율사가 지었다. 성덕왕 4년(705년)에 중창하였으나, 1946년에 불타 1947년에 새로 지은 절이다.

 

성원사에는 세조가 직접 보았다고 하는 문수동자의 모습을 조각한 문수동자상, 상원사를 중창하기 취해 세조가 쓴 친밀어첩인 중창권선문이 있다. 세조가 상원사에서 기도하던 어느날, 오대천의 맑은 물이 너무 좋아서 혼자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지나가던 한 동승에게 등을 밀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목욕을 마친 세조는 동승에게 “어디 가든지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니 동승은 미소를 지으며 “어디 가든지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하지 마십시오.”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세조가 놀라 주위를 살피니 동승은 간 곳 없고 어느새 자기 몸의 종기가 씻은 듯이 나은 것을 알았다.

 

이렇듯 문수보살의 가피로 불치병을 치료한 세조는 크게 감격하여 화공을 불러 그 때 만난 동자의 모습을 그리고 목각상을 조각하게 하니 이 목각상이 바로 상원사의 문수동자상이며, 목욕을 할 때 관대를 걸어두었던 그 곳이 지금의 관대걸이다. 상원사에서 내처산을 오르면 석가세존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을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상원사에는 너와지붕의 소림초당, 청량선원, 영산전, 동종각 등의 부속건물을 지니고 있으며, 한강의 발원지라 알려진 우통수도 상원사 부근에서 볼 수 있다.

 

오대산은 중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의 오류성중(五類聖衆)이 상주한다는 믿음이 산명(山名)으로 나타난 것이다. 즉 동대에는 관세음보살, 서대에는 아미타불, 남대에는 지장보살, 북대는 석가모니불, 중대에는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종각(鐘閣)만 남고 건물은 8.15광복 후에 재건한 것이다. 현존 유물 중 가장 오래된 상원사동종(국보 제36호), 목조문수 동자좌상(국보 제221호),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보물 제793호)등 신라와 고려시대의 살아있는 불교문화는 상원사만이 간직하고 있는 자랑이라 할 수 있다.

 

상원사 종은 한암 선사가 혼신을 다해 지키려 했던 종이기도 하다. 6.25당시 후퇴작전을 펴던 국군이 적의 근거지가될 오대산 일대의 사찰을 불태웠을 때, 한암 선사는 결연한 모습으로 상원사와 이 종을 지켰다.

 

소각명령을 받은 정훈장교가 절에 불을 지르려 하자 “나는 불법을 위해 죽을 것이다. 중이 죽으면 어차피 화장을 해야 하는 것, 당신이 군인의 본분에 따라 명령에 복종하듯이 절을 지키는 것도 나의 본분이다. 나는 마지막까지 승려의 위치를 지키다 죽을 것이니 이제 불을 지르시오”했다. 스님의 법력에 감화된 정훈장교는 법당의 문짝만을 뜯어 마당에 쌓아 놓구 불을 질러 소각하는 것처럼 위장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당시 정훈장교였던 선우휘 씨가 쓴 단편 『상원사』에 소개된 이야기이다. 이 작전으로 월정사도 불탔고 양양 선림원지에서 옮겨 온 선림원지 범종도 불속에 녹아 버리고 말았는데, 한암스님의 법력이 있었기 때문에 상원사 문수동자와 동종은 살아남게 된 것이다.

 

한암스님은 1876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22세 되던 해 금강산 여행에서 깊은 종교적 감명을 느끼고 입산하였다고 한다. 경허스님의 제자로 깨달음을 얻었으며 1925년 봉은사 조실로 계실 때 조선총독부에서 협조를 요청하자 “차라리 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익히지 않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오대산 상원상 은둔, 입적하실 때까지 27년 간을 산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1.4후퇴 때에도 피난가지 않고 끝까지 절을 지켰는데 마지막 가는 길 또한 장엄하였다. 모두가 떠난 텅 빈 절간에서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든 모습으로 입적하였는데, 마침 그 곳을 지나던 박 모라는 종군기자에 의해 그 모습이 사진으로 남게 되었다. 지금도 오대산 스님들에게는 마지막 가시던 선사의 모습이 선방의 죽비소리 같은 수행의 지침이 되고 있다.

최근 정념, 나우, 인광스님 등이 주지로 소임을 살며 수행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가꾸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