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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108산사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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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봉은사(奉恩寺, 서울 수도산)
2017-11-02 11:17:14

서울 강남구 삼성동(三成洞) 수도산(修道山)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사찰로 신라 원성왕 10년(794년)에 고승 연회국사(緣會國師)가 창건하여 견성사(見性寺)라 하였다. 처음 견성사에서 현재의 봉은사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정현왕후(貞顯王后)가 선릉(宣陵:成宗陵)을 중창하고 봉은사(奉恩寺)라 개칭하면서 알려졌다.

 

조선 명종 17년(1562년) 선릉(宣陵, 성종의 무덤)의 봉릉사찰(奉陵寺刹)로 지정하고 선릉으로부터 1km쯤 북쪽에 떨어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그러나 임진·병자 양란을 겪는 동안 모두 소진되었는데 인조 15년(1637년)에 경림(敬林)스님이 중건하여 내려오다가 1939년에 다시 불에 타버린 것을 1941년에 태욱(泰旭)스님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 중종과 명종때에 보우선사(普愚禪師)를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활약한 휴정(休靜), 유정(惟政)등 역대에 걸쳐 많은 고승을 배출하였다. 특히 보우스님은 금강산 마하연암에서 참선과 경학을 연구하였고 명종 4년(1548년)에 당시 섭정하던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봉은사 주지가 되었으며 선교양종(禪敎兩宗)과 승과고시(僧科考試)를 부활하고, 1551년에는 선종을 관장하는선종수사찰(禪宗首寺刹)로 지정됨으로서 조선불교를 부흥하는 근본도량으로 확고한 위상을 확립하게 되었다.

 

1551년에는 선종판사가 되어 윤원형(尹元衡)등과 합심하여 3백여 사찰을 국가 공인 정찰(淨刹)로 하고 도첩제를 실히하여 2년 동안에 4천여 명의 승려를 뽑는 한편 승과를 설치케 하였다. 당시 많은 승려가 응시하여 봉은사 앞 뜰에서 시험을 받기 때문에 승과평(중의벌)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하였다.

 

봉은사는 조선 말기인 1902년에 대한사찰령이 제정되면서 전국 14개 수사찰 가운데 하나로 지정되었고 1911년에는 서울 및 경기도의 8개 군에 위치한 80여 사암을 관할하는 본사가 되었다.

 

1922년과 1929년 두 차례의 대홍수 때는 대대적으로 수재민을 구호하여 주민들이 절 앞에 수해구제공덕비를 세워 봉은사의 위상을 대외적으로 더욱 높였다.

 

1939년 대화재로 대부분의 전각과 당우가 소실되어 1941년에 선불당, 운하당, 심검당을 그리고 그 이듬해 명부전, 연산전, 복극보전 등을 중창 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된 뒤 봉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직할사찰로 되었고 1972년에는 동국역경원의 역장이 들어서면서 역경사(譯經士)들을 본격 양성하기 시작함으로써 한국 불교의 현대적 발전에 이바지 하였다.

 

1974년에는 진여문과 대웅전을 중창했고, 1996년에는 높이 23m의 국내 최대크기의 미륵대불이 조성되었다. 현재 봉은사는 영암, 밀운, 대운, 성문, 무상, 원혜스님의 중창원력이 살아 숨쉬는 도량으로 서울의 새로운 중심지가 된 강남의 한복판에 위치한 도심속의 대표적인 저통사찰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서울·경기지역 20만 불자들에게는 기도와 수행도량으로서 또한 일반국민과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는 안온한 휴식처이자 불교문화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 자리하고 있다.

 

봉은사의 다락 누문의 ‘대도장’이란 현판은 위창 오세창(吳世昌)의 휘호이고, ‘대웅전’ 현판은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휘호이며, 또 대웅전 서쪽 ‘판전’ 현판은 추사가 죽기 3일전 쓴 절필로 전해지고 있다.

 

판전 안에는 81권이나 되는 <화엄경목판>을 위시해서 <금강경판> <유마경판> <한산시판>등 13가지의 경판 3,749판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서 경전 연구에 귀중한 보물로 인정되고 있으며, 또 선불당은 일종의 대중 선방으로 독특한 구조를 가진 건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