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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108산사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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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봉암사(鳳巖寺, 문경 희양산)
2017-11-02 11:17:39

경북 문경시 가은읍(加恩邑) 원북리(院北里) 희양산(曦陽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선풍(禪風)을 이끌고 있고, 수행도량의 최후 보루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신라 선문구산(禪門九山) 가운데 하나인 희양산문으로 1천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선맥(禪脈)을 도도히 이어온 명찰로 철저한 입산통제로 빼어난 자연과 수행환경으로 언제나 100여명의 선승들이 용맹정진하는 우리나라 불교의 성지다.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로 신라 헌강왕 5년(897년) 지증(智證:智詵)국사가 창건하여, 희양산문(曦陽山門)의 본거지가 되었다. 고려에 들어와 태조 18년(935년) 정진국사(靜眞國師)가 재건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함허득통(涵虛得通)이 주석하면서 금강경오가해설의(金剛經五家解說誼)를 저술했다.

 

봉암사는 그 후에도 몇 번의 소실을 당하고 중건을 거듭했다. 조선시대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현종 17년(1674년) 신화(信和)스님이 중건하였다. 보물 제169호인 삼층석탑, 보물 제137호인 지증대사(智證大師) 적조탑(寂照塔), 보물 제138호인 지중대사 적조탑비, 보물 제171호인 정진대사 원오탑, 보물 제172호인 정진대사 원오탑비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봉암사는 1982년부터 조계종단에서 청정 수행도량(특별수도원)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어찌 보면 가장 문턱이 높은 사찰일지 모른다. 사찰을 초파일에만 개방하고 있다.

 

희양산은 백두대간의 단전에 해당하는 높이 999m의 거대한 바위산으로 서출동류하는 30리 계곡을 끼고 있어 천하 길지로 이름나 있다. 멀리서 보면 우뚝한 모습이 한눈에 영봉임을 알수 있는데 봉황과 같은 바위산에 용과 같은 계곡이 흐르고 있어 예로부터 봉암용곡이라 불렀다.

 

해방직후 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상황에서 봉암사는 한국불교으 현대사에서 새로운 흐름을 창출한 결사도량으로 거듭난다. 이름하여 ‘봉암사 결사’가 그것이다. 봉암사 결사는 1947년 성철스님을 필두로 청담, 자운, 우봉스님등 4인이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임시적인 이익 관계를 떠나서 오직 부처님 법대로 한번 살아보자.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고쳐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라는 원을 세우고 결사도량을 찾으니 그 곳이 봉암사였다.

 

그 후 청담, 향곡, 월산, 종수, 보경, 법전, 성수, 혜암, 도우등 20인이 결사에 참여하였다. 당시 결사대중은 공주 규약을 제정하여 추상같은 법도를 세워 오늘날 수행의 근간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사정진도 1950년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단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하게 된다. 그 후 1970년 초부터 다시 수좌들이 봉암사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불료신문 기록으로 보건대 봉암사 희양선원은 1972년 향곡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15명의 납자가 제접했다. 1980년경 서암스님이 정식으로 태고선원 조실로 모셔지면서 선원은 청룡의 승천과 봉황의 날개짓처럼 웅대한 자태를 희양산 자락에 펼치게 되었다.

 

1982년 6월 종단은 봉암사를 조계종 특별 수도원으로 지정하여 성역화 의지를 표명하였다. 1982년 7월 문경군에서는 사찰 경내지를 확정 고사하였다. 그래서 화양산 봉암사 지역은 특별 수도원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동방제일 수행 도량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이어 1984년 6월 제 13차 비상종단 상임위원회에서는 선풍 진작과 종단 발전을 위해 봉암사를 종립선원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1994년 범룡스님이 조실로 추대되어 2년여간 납자를 제접하여오다, 2000년 하안거 해제에 진제스님을 조실로 모셨으며 그후 2001년 하안거 결제에 서암스님을 다시 조실로 추대하여 대중 스님들을 지도 하시다가 2003년 3월 29일날 열반에 드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