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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108산사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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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백담사(百潭寺, 인제 설악산)
2017-11-06 15:02:36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雪嶽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진덕여왕 1년(647년) 자장율사가 설약산 한계리에 창건하였으며, 그 때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고 절 이름을 한계사(寒溪寺)라 했다.

 

창건한 지 50여년 만인 신문왕 10년(690년)에 실화(失火)로 소실되어 성덕왕 18년(719년)에 재건하였다. 그 뒤 원성왕 1년(785년)에 다시 불탔으며, 종연(宗演), 광학(廣學), 각동(覺洞), 영희(靈熙), 법찰(法察), 설흡(雪洽)스님 등이 중건을 서둘러 790년에 한계사터 아리 30리 지점에 이건()하고 절 이름을 운흥사(雲興寺)라고 개명하였다.

 

고려 성종 3년(984년)에 다시 불타버려 운흥사지 북쪽 60리쯤 되는 곳으로 이건하고 성종 6년(987년) 심원사(深源寺)로 개명하였다.

 

그 뒤 조선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450년 동안은 별다른 변화 없이 전승되다가 세종 14년(1432년)에 네 번째의 화재로 절이 전소되었다. 그 뒤 2년 만에 동하(洞下) 30리 쯤 되는 곳에 선구사(旋龜寺)라 개칭하고 의준(儀俊), 해섬(海暹), 취웅(翠雄)스님 등이 법당과 극락전, 요사채 2동을 세웠다.

 

그러나 1443년에 화재로 다시 소실되었고, 1447년에 옛터의 서쪽 1리쯤 되는 곳에 다시 절을 세우고 영축사(靈鷲寺)라 하였다.

 

그러나 김시습(金時習)이 부속암자인 관음암(觀音庵)에 와서 머리를 깎고 출가했던 세조 1년(1455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재익(載益), 재화(載和), 진열(愼悅)스님 등이 옛 절터의 상류 20리 지점에 중건하고 백담사(百潭寺)라고 개칭하였다.

 

조선 영조 51년(1775년) 겨울에 다시 불에 타서 승려들은 흩어졌지만 최붕(最鵬), 태현(太賢), 태수(太守)스님 등이 인법당을 짓고 심원사(深源寺)라 개칭한 뒤 6년 동안 머물면서 법당과 향각 등의 건물을 중건하였다.

 

심원사(深源寺)를 다시 백담사(百潭寺)로 개칭한 것은 최붕(最鵬)과 설담(雪潭)이 절을 중건한 정조 7년(1783년)이었고, 이때의 백담사(百潭寺)라는 이름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지금의 이름인 백담사로 불리게 될 때까지 7차에 걸친 실화가 닥쳤고, 그때마다 터전을 옮기면서 이름을 바꾸었다. 계속되는 화재로 절의 이름을 바꾸어 보려던 어느 날, 주지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의 수를 세어 1백개가 되는 장소에 사찰을 건립하면 삼재(木,火,風)를 면하리라고 현몽하기에 현재의 위치에 건립했으며, 담(潭)자는 불의 기운을 막을 수 있다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담(潭)자를 넣어 백담사(百潭寺)로 이름을 개명을 하였는데 그 효험인지 한동안은 화재가 일어나지 않다가 1915년 겨울밤에 또 다시 화재가 일어나 불상과 탱화 20여위를 제외한 건물 70여칸과 경전, 범종까지도 모두 태워버렸다. 당시의 주지 인공스님은 사무를 오세암에서 행하면서 백담사의 중건에 착수하였고 기호, 인순스님 등이 도왔는데 강원도 일대를 다니면서 사주받아 법당 20칸과 화엄실(華嚴室) 20칸을 건립하였으며, 1921년 봄에는 응향각(凝香閣) 및 사무실 30칸 등을 이룩하고 종과 북을 새로이 주조하여 낙성법회(落成法會)를 열었다.

 

1915년 겨울밤에 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 70여칸과 경전과 종을 태워 최근까지 계속 불사가 일어나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 만해스님이 머물면서 ≪불교유신론(佛敎維新論)≫≪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님의 침묵≫을 집필하였다. 6.25전쟁 때 소실 되었다가 1957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중심 법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산령각, 화엄실, 법화실, 정문, 요사채 등이 있으며, 뜰에는 삼층석탑 1기가 있고 옛 문화재는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부속암자로는 봉정암, 오세암, 원명암(圓明庵)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