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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108산사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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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무위사(無爲寺, 강진 월출산)
2017-11-06 15:03:43

전남 강진군 성전면(城田面) 월출산(月出山) 남동쪽에 있는 고찰로 신라 진평왕 39년(617년)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하여 관음사((觀音寺)라 하였는데, 헌강왕 1년(875년) 도선(道詵)국사가 중건하여 갈옥사(葛屋寺)라 개칭하였다.

 

고려 정종 1년(946년)에는 선각(先覺) 형미(逈微)대사가 3창하여 모옥사(茅玉寺)라 하였다. 조선 명종 5년(1550년) 태감(太甘)선사가 4창하고 무위사(無爲寺)라 개칭하였다. 그러나 경내에 있는 보물 507호인 선각대사편광탑비(先覺大師遍光塔碑)의 비명(碑銘)에 의하면 신라시대에도 이미 무위갑사(無爲岬寺)로 불렸다고 한다.

 

이 때의 당우(堂宇)는 본절이 23동, 암자가 35개로서 모두 58동에 이르는 대사찰이었는데, 그 후 화재 등으로 축소되었다.

 

조선 태종 7년(1407년) 12월에 각처의 명찰로 여러 고을의 자복서(資福寺)를 삼게 하였는데, 이 때 무위사는 천태종 17사 중의 하나로 소속되었다.

숙종 4년(1678년)에는 극락전 앞마당에 있는 당간지주가 제작되었고, 영조 15년(1739년)에 해초(資福寺)스님의 공덕으로 중창되었다.

 

최근가지만 해도 남아 있는 당우는 극락전과 명부전 및 요사(寮舍)뿐이었는데, 1974년 벽화보존각(壁畵保存閣) · 해탈문(解脫門) · 봉향각(奉香閣) · 천불전(千佛殿) ·미륵전(彌勒殿) 등을 중건하면서 옛날의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중 국보 제13호 극락전은 벽에 29점의 벽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본존불(本尊佛) 뒤의 탱화(幀畵)만 남아 있고, 28좀운 보존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 벽화들은 법당이 완성된 뒤 찾아온 어떤 노거사(老居士)가 49일 동안 이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그렸다는 전설이 있다.

 

무위사는 우선 그 자리가 편안하다. 평지사찰로 절을 찾는 사람들에게 우선 편안한 기분을 주고 또 평지사찰 답지 않게 주변의 월출산과 그리 잘 어울릴 수가 없다.

단아한 절 안에는 극락보전 옆의 감나무와 뒷산의 붉가시나무 그리고 마당안 두그루의 탱나무와 한그루의 느티나무가 가져다주는 소박하고 다정다감한 분위기가 있으며, 특히 수백년동안 병풍처럼 둘러 선 봄철의 동백나무는 그 꽃의 아름다움을 넘어 차라리 눈물이 고일 것 같은 처연함을 가지고 있다. 남도답사 일번지의 첫 탐방장소로 꼽히는 이 무위사에는 고향에 찾아온 듯한 그리움이 있다.

 

주요문화재로는 극락보전(국보13),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144) 선각대사편광탑비(보물507), 월남사지 모전석탑(보물298호), 월남사지 석비(보물 313호), 목조아미타 삼존불좌상(보물 1312호), 극락전 아미타 후불벽화(보물 1313호) 극띾전 백의관음도(보물 1314호), 극락전 내벽사면벽화(보물 1315호)등이 있으며, 일제강점기인 1934년 절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극락전이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었다. 해방 이후 1956년에 극락전을 수리 보수하고 보존각을 새로 세워 그 안에 벽화를 봉안했고, 1975년에는 편광영탑비와 사리탑 등에 대한 정화 불사에 이어 봉향각 · 해탈문 · 명부전 · 천불전을 다시 지었다.

그리고 1991년에 산신각을 짓고 1995년에는 이미 있던 동쪽 요사를 늘려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