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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108산사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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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경국사(慶國寺, 서울 삼각산)
2017-11-06 15:40:34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貞陵洞) 삼각산(三角山) 동족 기슭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고려 충숙왕 12년(1325년) 자정(慈淨)율사가 창건하여 청암사(靑巖寺)라 하였는데, 절이 청봉(靑峰) 아래에 이치해 있어 청암사라 이름 붙인 것이다. 충혜왕 1년(1331년) 채홍철(蔡洪哲)이 요사채를 증축, 스스로를 증봉거사(中峯居士)라 칭하고 선방(禪房)을 열어 많은 선승과 함께 수도하였다.

 

그러던 것을 인종 1년(1545년) 조선왕실의 도움으로 중건이 이루어지고, 다음해인 명종 1년(1546년)에 가서는 문정왕후가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대대적인 중창 불사가 이루어졌다. 명종 5년(1549년)에는 문정왕후가 국가에 경사가 끊이지 않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경국사(慶國寺)라고 사명을 바꾸었다.

 

당시에는 서울에서 가장 인접한 호국기원도량이었는데 문정왕후가 승차하자 이 곳에서 국재(國齋)를 지냈으며, 선조 25년(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서산대사(西山大師)와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이 곳에 구국승병을 이끌고 와서 머물며 총지휘를 하기도 했다.

 

숙종 19년(1693년) 연화선사(蓮華禪師) 승성(昇誠)스님이 중수하고 천태각(天台閣)을 지었으며, 영조 13년(1737년) 주지인 의눌(義訥)스님이 중수, 현종 8년(1842년) 낭오(郎旿)스님이 중수·증축해 국재(國齋)를 치르는 대찰이 되었다.

 

고종 1년(1864년) 고종의 등위재(登位齋)를 갖고, 1868년에는 기울어지는 국운을 염려하여 칠성각(七星閣) · 산신각(山神閣)을 짓고 호국 대법회를 열었다. 1915년에는 극락보전 중수가 이루어졌는데, 1921년에는 탱화(幀畵) · 단청(丹靑)에 조예가 깊은 보경(寶鏡)스님이 주지가 되어 자비로 중수하고, 연산전(靈山殿) · 산신각 등을 단장하여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보경 보현(寶鏡普賢)스님으로 인해 경국사는 현대사에 있어 크게 부각이 되었는데, 스님은 1921년 주지가 된 후 60년간을 절에서 떠나지 않았고, 단청(丹靑)과 불화 조성에 일가를 이루었던 분이다.

 

현재 경국사의 연산전과 명부전, 삼성보전 등의 전각에는 보경스님이 직접 그리고 조성한 불화와 불상이 많이 남아있다. 또한 전등사와 낙산사, 삼막사, 연주암, 보신각, 경회루 등에도 스님의 손길은 거쳐 갔다. 또 스님은 근대기 경국사의 역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교학과 선지(禪智)를 두루 익히고 계율에도 철저하여 승가의 귀감이 되기도 하셨다.

 

일제 통치하에서 민족자주독립운동에 앞장섰던 33인중 불교계 대표였던 백룡성(白龍城), 한용운(韓龍雲)두 스님이 이 곳에서 주석하며 정진했다. 1950년대에는 이승만대통령이 경국사에 들렀다가 보경스님의 인격에 감화되어 몇 차례나 찾아왔고, 참다운 승가의 모범이 이곳에 있다고까지 칭송했다. 그래서인지 1953년에는 닉슨 미국 부통령이 방한하였을 때도 한국문화의 참모습이 이곳에 있다고 하여 그를 절에 안내하기도 했다. 후일 닉슨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경국사에서 참배했던 경험이 한국방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근래에는 한국불교계의 대표적 학승(學僧)이면서, 32대 조계종총무원장이신 지관(智冠)스님이 1979년부터 주석하시면서 활발한 포교활동과 절의 내실을 다지기도 했다. 현재 경국사의 모습은 지관스님의 노력에 힘입어 이룩된 것으로 예전에 비해 한층 더 빛을 내고 있다.

 

이렇듯 경국사는 자정국존의 창건 이래 엄격한 계율을 지켜온 고승대덕의 수행지였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청정한 승가의 참모습을 간직한 곳으로 만인에게 두고두고 기억되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극락보전 안에는 보물 제748호로 지정되어 있는 목각탱과 신중탱화 · 팔성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명부전에는 11세기경 중국 요(遼)나라 때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철조관음보 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외에 석조물로는 자운율사사리탑, 화원이면서 경국사 주지를 지냈던 보경스님의 사리탑과 행적비, 경국사사적비 등이 있다.

 

특히 주변 경관이 좋고 약수가 있어 참배객이 끊이지 않으며, 창건 이래 한국불교 계율의 맥을 이어온 표본적 도량(道場)이다.

 

당우는 현재 17동이 있는데, 풍남(楓南)이 쓴 약 600자의 <천태성전 상량문>도 색다르다.